세계 언론 ‘악의축’ 발언 비난목소리 점차 거세

  • 입력 2002년 2월 5일 17시 49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선언하고 “위험이 증폭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위기가 가까이 오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세계 주요 언론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미국을 비롯해 대다수 언론은 이에 반대하는 사설과 기사를 게재했다.

▽‘악의 축’ 개념 규정 논란〓‘악의 축’이라는 용어는 미 국방부의 연설문 작성가인 마이클 거슨과 데이비드 프럼이 연두교서의 국방 관련 내용을 정리하면서 만들어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월11일자에서 “부시 대통령이 세계 2차대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 3국을 지칭한 추축국이라는 용어와 역사적 맥락이 닿는다고 보고 이 용어를 직접 선택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동맹을 체결했던 추축 3국과는 달리 이란과 이라크가 80년부터 88년까지 전쟁을 벌인 앙숙관계인 것은 물론 3국이 최근 테러리즘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즉각 논란을 야기했다.

뉴욕타임스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USA투데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30일 북한과 이란을 이라크와 함께 묶은 것을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같은 날 사설을 통해 “9·11테러가 미국에 무제한의 ‘사냥 면허’를 준 것은 아니다”며 화려한 수사학이 공공연히 표방하고 있는 3국에 대한 군사개입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다만 워싱턴포스트와 영국의 더타임스는 이들 3국이 대량파괴무기를 개발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군사 행동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지지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프랑스의 르몽드는 이에 대해 “대량파괴무기가 이유라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등 3국에 군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주요 공급자라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론을 제기했다.

'악의 축' 규정에 대한 주요언론의 논조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인디펜던트, 가디언, 르몽드, 리베라시옹, LA타임스, 주간지 타임 뉴스위크
‘악의 축’인 것은 사실이나 북한에 대한 군사작전은 신중해야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악의 축’ 규정도 옳고 선제적 조치까지도 옳다더타임스

▽‘악의 축’ 선언 배경〓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국내 정치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언론이 많았다.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부시 대통령의 강경한 시각은 국내에서는 잘 통할지 모르지만 해외에서는 매우 불쾌한 반응을 낳을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의 오하이오주나 위스콘신주에서는 환영받을지 모르지만 중동에서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테러와의 전쟁을 ‘악의 축’ 국가로 확대하려는 것은 이들의 장거리 미사일 위협을 과장함으로써 미국 내에서도 논란을 빚고 있는 미사일방어(MD)체제를 구축할 명분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브루스 애커먼 예일대 법대 교수의 기고문을 싣고 “전시 조성된 대중적인 지지를 계속 끌고 가려는 정치적 야심이 숨어 있다”고 보도했다.

▽새 외교 독트린인가〓‘악의 축’ 선언으로 향후 미 외교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일단 이들 3국과 미국의 대화 가능성은 봉쇄된 것으로 보인다고 타임은 보도했다.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국가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군사작전으로 돌입하는 것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뉴스위크가 2월11일자에서 보도했다.

그러나 대다수 미 언론은 이들 3국 중 이라크에 대한 군사 작전의 명분에는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라크야말로 가장 명백한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군사 작전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방법도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타임은 “이라크 국민의 고통에 대한 동정이 확산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아랍 지도자들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제거하는 것을 내심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는 이라크 침공시 선택 가능한 전술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이라크 반정부 세력인 이라크 국가의회에 자금 지원을 개시했고 다른 재야 세력과의 연대도 모색하고 있다고 타임은 전했다.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결국 테러와의 전쟁을 이라크로 확대한다는 신호탄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언론의 분석이 많았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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