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최대 에너지社 엔론그룹 파산의 ‘그늘’

  • 입력 2001년 12월 6일 18시 36분


미국 최대의 에너지 기업이었던 엔론의 파산은 그동안 투명하고 효율적 경영의 모범으로 평가받아 왔던 미 기업경영과 회계제도의 그늘을 드러내 보였다. 경영과 회계의 두 측면에서 엔론 파산사태가 주는 교훈과 시사점을 짚어본다.

▼레이회장, 부시家와 오랜친분 과시 ▼

◆로비에 의존한 경영=엔론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케네스 레이 회장(사진)과 제프 스킬링 최고경영자(CEO)의 방만한 경영방식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레이 회장은 지난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선거자금으로 2000만달러를 선뜻 내놓았을 정도로 부시 가문과 오랜 친분관계를 유지해 왔다. 텍사스에 있는 엔론 본사에서 경영에 몰두하기보다는 워싱턴에서 로비에 주력해온 레이 회장은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미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위원장으로까지 거론돼 왔다. 레이 회장은 올 1월부터 7월까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엔론 주식 2300만달러어치를 팔아치웠다. 투자자들은 8월 엔론의 경영난이 표면화되기 바로 직전에 레이 회장이 심각한 부실을 사전에 감지하고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10월말 레이 회장이 자산규모가 엔론의 5분의 1정도에 불과한 다이너지와의 합병을 시도했던 것에 대해서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레이 회장이 다이너지 합병을 추진했던 것은 합병이 성사될 경우 엔론으로부터 자동적으로 6200만달러의 퇴직수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엔론의 주식을 팔아치우기는 8월까지 CEO직을 맡아왔던 스킬링도 마찬가지. 회사 경영상태에 대한 아무런 언급없이 갑작스럽게 CEO직 사퇴를 발표한 스킬링은 올 상반기 1750만달러어치의 자사 주식을 팔아치웠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97년 엔론 사장에 임명된 스킬링은 사업구조를 비용이 많이 드는 에너지 생산에서 고수익이 보장되는 에너지 중개 분야로 전환했으나 중개 수수료가 크게 낮아져 고전했다. 이 바람에 회사의 자산가치 또한 크게 떨어져 결국 엔론의 몰락을 몰고 왔다.

<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매출기준 세계7위 기업▼

◆엔론그룹은=엔론은 90년대 후반 미국의 에너지시장 규제 완화 바람을 타고 에너지 생산업체간 거래를 중개하는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고속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매출기준 세계 7위의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100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 하반기부터 무분별한 사업확장 등으로 경영난이 표면화되면서 엔론은 전체 종업원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4000여명의 종업원을 해고했으며 지난해 8월 주당 84달러까지 올랐던 주가는 파산 신청이후 26센트까지 떨어졌다.

▼4년간 수익 7800억원 과다계상▼

◆눈감은 회계시스템=최근 파산을 신청한 미 최대의 에너지 기업 엔론이 지난 4년간 수익을 5억9100만달러(약 7800억원)나 과다계상한 것으로 드러나 미국 회계 시스템의 공신력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이 회사를 감사한 회계법인은 미 5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아서 앤더슨.

미국의 회계 시스템은 세계적 표준으로 간주돼 왔는데 아서 앤더슨을 포함한 딜로이트 앤드 투치, 언스트 앤드 영, KPMG,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등 ‘빅5’가 대부분 분식회계를 적발하지 못해 소송을 당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이 더 크다. 이들 5대 법인은 대부분 한국에서도 맹렬히 영업 중이다.

5일 온라인판 포브스지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엔론의 주가는 4배 이상 뛰었다. 그동안 엔론의 발표만 믿고 너도나도 엔론 주식을 사들인 탓. 파산신청으로 큰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그동안 엔론의 분식회계를 잡아내지 못한 아서 앤더슨에 대해서 집단 피해보상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이다.

아서 앤더슨은 6월에도 회계감사를 했던 웨이스트 매니지먼트사가 수익을 1억2800만달러나 과다계상한 것을 밝혀내지 못해 미 증권감독원에 700만달러의 벌금을 납부했고 이 회사와 함께 총 2억2000만달러의 피해보상금을 분담키로 한 바 있다.

아서 앤더슨 외에도 KPMG는 고객이었던 라이트 에이드가 2년간 10억달러나 수익을 과다계상한 데 휘말려 집단소송을 당했으며 언스트 앤드 영도 CUC가 5억달러나 수익을 과다계상하는 바람에 98년 CUC 주주들에게 3억3500만달러를 지불했다.

워싱턴포스트는 5일 이 같은 사례를 들면서 “회계법인들이 일반적으로는 감사가 엄격하게 실시되고 있으나 항공기 사고처럼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회계 감사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분식회계의 근본적인 이유는 회계법인으로서는 기업이 감사 대상이자 고객이라는 점. 고객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눈 감아달라’는 고객의 요청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것. 증권계의 거물인 워런 버핏도 ‘나는 내게 빵을 주는 사람의 노래를 부른다’는 속담으로 이 같은 상황을 갈파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회계감사가 부실해질 수 있는 다른 원인은 본업인 회계감사보다 수입이 더 좋은 컨설팅에 치중하기 때문. 회계감사를 계기로 고객을 유치한 뒤 경영 전반에 관한 컨설팅 수주로 연결시킨다는 것.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KPMG는 모토로라로부터 회계감사 항목으로는 390만달러를 벌었지만 컨설팅을 포함한 다른 프로젝트로 15배가 넘는 623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전 증권감독원 수석 회계사였던 린 터터의 말을 인용해 “지난 6년간 분식회계로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이 1000억달러에 달했고 회계의 문제점이 적발된 사례가 지난 3년간 두 배나 늘어 233건에 이른다”고 전했다.

<홍은택기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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