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폭탄테러-이 보복공격 갈림길에 선 3국 지도자]

  • 입력 2001년 12월 3일 18시 38분


부시-샤론 긴급회담
부시-샤론 긴급회담
이스라엘이 3일 예루살렘 등지에서 발생한 연쇄 폭탄테러에 대한 보복 공격에 나섬으로써 중동지역은 또다시 피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됐다. 미국 방문일정을 단축해 급거 귀국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비상각료회의를 주재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복 공격은 물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대한 축출 조치까지 검토하는 강경 입장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중동평화협상 중재에 나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물론 샤론 총리와 아라파트 수반 모두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부시, 갈길먼 중재…또 외교시험대 올라▼

예루살렘 등지에서 발생한 최악의 연쇄 폭탄테러 사건으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중동외교도 시험대에 올랐다.

당초 부시 행정부는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중동문제에 대해 거리를 둬왔다. 그러나 9·11 테러가 미국의 잘못된 중동정책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데다 대테러 전쟁 수행을 위해 아랍권의 지지가 필요하자 적극적인 중동개입 정책으로 바꿨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 개시 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전통적 우방인 이스라엘 측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해왔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평화협상 전제조건으로 이슬람 과격단체인 하마스 요원의 체포 등 비현실적인 조건들을 내세우자 미국은 하푼미사일(53기)의 이집트 판매라는 카드까지 내밀며 이스라엘을 압박했던 것.

하지만 이번 폭탄테러로 이런 상황이 변했다. 부시 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테러 응징은 이스라엘의 권리”라며 이스라엘 측을 옹호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일단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공을 넘긴 뒤 사태 추이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 같은 정책 선회가 ‘대증요법식’ 처방으로 볼 수 있는 데다 9·11 테러사건 이전의 중동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평화협상에서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샤론, 힘실린 보복…反테러 여론 업고 응징 저울질▼

매파인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자살테러로 외교적으로 유리한 입지에 서게 됐다. 지난달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점령할 때 탱크까지 동원하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 국제사회의 호된 비난을 받았으나 이번 테러로 국제 여론이 동정적으로 돌아섰기 때문. 그가 공언한 “상응한 보복조치”에 대해서도 상당 정도 용인하는 분위기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이번 기회에 아예 “테러의 싹을 잘라버리자”는 여론이 높다. F16 전투기를 동원해 보복에 나서자는 강경 방안도 나온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전체에 전기철조망을 설치해 이스라엘과 분리하자는 안도 거론된다. 심지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제거하거나 추방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아예 없애버리자는 주장까지 있다.

우지 란다우 내무장관은 “우리는 그동안 아라파트에게 충분한 기회를 줬다”며 “이번 기회에 모기를 죽일 게 아니라 모기가 서식하는 늪, 즉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깨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샤론 총리가 극단적인 보복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3일 미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아라파트를 제거할 경우 그를 순교자로 만들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하마스 등 이슬람 과격단체가 실권을 잡게 되면 중동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돈과 유혈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

▼아라파트, 좁아진 입지…국제적 비난 곤혹▼

연쇄 자살폭탄 테러 이후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급속도로 차가워지고 있다.

아라파트 수반은 테러발생 직후 강력히 비난하며 곧바로 자치지역 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어 무장단체 조직원에 대한 일제 단속에 들어가 하루 동안 지하단체 조직원 75명을 체포하는 등 유례없이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

이런 대응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아라파트를 믿기 힘들다’며 냉소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이스라엘 측은 아라파트의 비상사태 선포가 기만 전술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온건파인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조차도 “아라파트 수반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테러근절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경고성 발언으로 그를 몰아세우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장악력에 의심을 갖게 할 만한 조짐이 보이면서 곤란을 겪고 있다. 하마스는 자치정부의 비상사태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일부 자치정부 관리마저도 연쇄테러의 원인을 이스라엘군의 하마스 지도자 암살로 돌리며 비상조치의 필요성에 회의를 나타냈다.

결국 외부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무장단체의 해체가 자칫 전면적인 내전을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라파트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별로 없어 보인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분석가들도 따라서 이번 비상사태 선포가 ‘최종적인 결정’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고 견해를 모으고 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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