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제2의 베트남전' 가능성

  • 입력 2001년 10월 8일 05시 14분


구 소련군이 10년간의 전쟁 끝에 치욕과 함께 물러난 아프가니스탄 땅에서 미군은 과연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대한 미국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부터 군사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이 제2의 베트남전쟁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특히 전쟁에 대해 신중론을 펴온 군사전문가들은 “탈레반과의 전쟁이 미국이 걸프전에서 거둔 것과 같은 승리를 가져다주기보단 베트남전에서 맛보았던 치욕스러운 패배를 안겨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지적이 큰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아프가니스탄과 베트남이 역사나 지리적 환경 등에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과 베트남은 오랫동안 서구 열강의 침략에 시달리면서도 끝끝내 독립을 지켜낸 만만치 않은 전략을 지니고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부터 일본 프랑스 등과 싸우며 국가를 지켜온 베트남은 전후 식민통치권을 주장하며 침략한 프랑스와 공산세력 확산을 막기 위해 참전한 미국을 상대로 30여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인 끝에 모두 승리를 거둬냈다.

아프가니스탄도 19세기부터 영국 인도 등과 싸워 승리했으며 79년부터는 10년간 소련과 전면전을 벌인 끝에 완전한 승리를 이끌어냈다.

아프가니스탄의 험난한 지형조건도 미군이 전면전을 수행하기엔 매우 열악하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열대밀림 속을 숨어다니며 게릴라전을 벌이는 베트콩들에게 속수무책이었다면 산악지형으로 국토 전체가 요새화 돼있는 아프가니스탄도 미군에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와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들과 전쟁을 벌인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남쪽 자유진영을 보호하고 북부 공산세력의 확산을 봉쇄한다는 명분으로 베트콩에 대한 전면 공격을 정당화했다

미국은 지난달 11일 뉴욕과 워싱턴 테러 직후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테러리즘을 근절하기 위해 ‘테러 비호국’을 침공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후 1973년까지 55만여명의 병력을 투입하고 28개 연합국의 지원까지 받고서도 끝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엄청난 인명손실만 입고 철군하게 된다.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이 같은 여러 가지 정황 때문에 최근 들어 미국 내에서도 공습 신중론이 강하게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베트남전에서 경험하지 못하던 결과들도 미국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 대한 이슬람 국가들의 여론이 급속히 나빠지고 미국에서 추가적인 테러가 발생해 대규모 인명이 희생될 경우 베트남전 때처럼 반전여론이 확산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유력한 언론들은 “구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경험한 실패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개전을 앞두고 신중론을 폈다.

<김성규기자>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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