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의료보건체제]의약분업 계기로 본 실태

  • 입력 2000년 8월 27일 19시 13분


《의약분업 논란은 그간 수면 밑에 있던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상당 부분 수면 위로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선진 각국의 보건의료체계를 점검하고 우리와 비교해본다.》

▼일본▼

보건의료체계는 몹시 복잡하지만 크게 의료보험이 통합되기 이전의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즉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이 분리 운영된다. 직장의보는 건강보험 선원보험 사학교직원보험 등으로 나눠지며 지역의료보험(국민건강보험)은 운영자가 조합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라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지역의료보험 재정 적자로 정부가 매년 막대한 예산을 의보재정에 쏟아붓고 있다.

일본은 의약분업을 둘러싼 논란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 국가. 1974년 뒤늦게 의약분업을 실시했고 그나마 임의분업을 채택하고 있다.

즉 처방전 교부에 대한 포괄적 예외규정을 두어 의사에게 조제권을 폭넓게 허용하고 환자가 원할 경우만 원외처방전을 발행토록 하고 있다. 현재 분업률은 30%선. 일본에서 의약분업이 처음 명문화된 것은 1874년에 공포된 의제(醫制). 그러나 당시에는 약사의 수가 적어 실제로는 의사의 의약품 조제가 허용됐다.

그 뒤 후생성은 의사가 의약품을 직접 조제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이익을 제한하는 대신 처방전 발행료를 대폭 인상함으로써 의약분업을 유도하고 있다. 현재 국립병원인 도쿄대 병원의 경우 90% 이상이 원외처방전이다.

국립기관과 공적의료기관이 전체 병원의 18.5%, 병상 수의 30.7%를 차지하는 안정적인 의료체계를 갖고 있다.

▼미국▼

보건의료체계가 시장원리에 맡겨진 세계에서 유일한 경우다.

최근 6월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세계보건 2000’ 보고서는 미국이 1인당 보건복지 예산은 3724달러로 세계 1위지만 의료수준은 37위라고 발표했다. 부유층은 비싼 민간보험으로 훌륭한 의료보장 혜택을 받는 반면 빈곤층은 모든 의료보장에서 제외돼 있기 때문.

그러나 이런 미국에도 국가 사회가 담보하는 최저선은 있다. 우선 미국 전체의료비의 45%를 차지하는 메디케어(고령자를 위한 사회보장) 메디케이드(빈곤층을 위한 사회보장) 등 사회보장시스템이 그것.

민간보험에도 들지 못하고 사회보장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미국인은 4600만명 규모. 이들이 아프면 어떻게 할까.

서울대 의대 이중의(李重宜)교수는 미국의 응급실은 ‘가난한 사람들의 외래병원’이라고 말했다. ‘응급의료 및 진통법(EMTALA)’에 따라 어떤 환자든 응급실에 나타나면 치료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응급진료를 받은 환자가 치료비가 없을 경우 국가에서 부담하거나 병원 예산으로 충당한다.

미국에서 2년간 살다온 지숙현씨(池叔炫·38)는 “비보험 환자들도 카운티병원 재향군인병원 등에서 값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며 “최소한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전한다.

▼영국▼

국민의료체계인 국가보건서비스(NHS)는 매우 독특하다. 병원 대부분이 국영이거나 공영이고 재원을 조세로 충당한다.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사는 과정에서 일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의료서비스가 무료다. 의료 수요의 90% 가량이 주치의 지역간호 예방사업 등 1차 의료에 의해 이뤄진다.

이 NHS도 최근 만성적 인력난과 재원부족에 시달려 비판이 없지 않다. 많은 의사가 낮은 처우 때문에 미국 등지로 탈출, 의료진이 인도나 파키스탄 출신으로 채워지거나 긴급하지 않은 질병에 대해서는 진료를 받기 힘들다는 것이 비판의 이유.

마거릿 대처 전총리가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NHS에 시장기능을 도입하려 했지만 대다수의 영국인은 아직도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의료혜택을 받는 이 제도를 절대적으로 선호하고 있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김창엽(金昌燁)교수는 “최근 들어 유럽에서도 시장논리에 입각한 병원들이 생겨나 고급의료에 대한 일부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소개한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5∼10%는 민간보험에 가입해 사립병원의 진료를 받는다. 이들 사립병원은 공공의료기관에 비해 신속하고 질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대신 비용이 많이 든다.

▼독일▼

생명존중 사상의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 의료서비스는 철저히 공공의 영역이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가들의 경우 대부분 사회보험에 기초한 국가 공영체계라 의료서비스가 무료이다.

그중에서도 독일은 의약분업의 원조국이라 할 수 있다. 의약분업의 기본골격이 되는 의약법이 자그마치 1231년 제정된 것이기 때문.

의약품에 대한 조제 투약 권한은 약사들에게만 부여된다. 주변에 의사의 진료장소나 약국이 없는 경우에만 예외가 인정된다. 이 경우도 의약품 판매는 반드시 자신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제한돼 있고 제3자에 대한 판매는 금지돼 있다.

독일의 의료보험은 ‘질병금고’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대부분 완벽하게 보험으로 운영된다.

지역별로 수백개에 이르던 질병금고는 통일과 함께 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10여개로 줄어들었다.

독일에서 환자들은 가정의의 처방전에 의해 지역약국에서 의약품을 공급받고 청구서를 질병금고에 보내면 여기서 전액을 환불해준다.

근래에 고급진료를 원하는 사람들이 민간보험에 가입,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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