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필리핀內 미군기지 터 유독폐기물 정화 거부

  • 입력 2000년 7월 24일 19시 09분


필리핀의 도밍고 시아손 외무장관은 23일 미국이 과거 미군기지로 사용했던 필리핀 내 시설의 유독폐기물 정화작업을 거부함에 따라 양국간 ‘환경협력에 관한 공동성명’이 사실상 무산됐다고 밝혔다.

시아손 장관은 24일부터 열흘간 미국을 방문하는 조지프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 대통령 사이에 이 공동성명이 서명될 예정이었으나 미국이 기지 정화작업 조항을 빼자고 주장해 합의를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마닐라 북부의 미군기지 터 두 곳에는 발암물질인 석면을 비롯한 유독 폐기물이 쌓여 있다. ‘기지정화를 위한 시민 특별대책위원회’는 유독 폐기물로 300명 가량이 숨지거나 고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지난주 마닐라 주재 미국 대사관을 통해 미국정부에 1020억달러의 배상을 요구했다.

미국이 필리핀의 기지 정화 요구를 묵살한 태도는 일본 내 미군 범죄에 대해 거듭 사과한 것과 판이하다.

클린턴대통령은 21∼23일 일본 오키나와(沖繩)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미군범죄에 대해 여러차례 사과했다. 그는 22일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고통’ ‘수치’ ‘죄송’이라는 단어를 연발했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미국의 태도가 한국 내의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요구에 어떻게 반영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국대사와 대니얼 페트로스키 주한 미8군 사령관이 23, 24일 각각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에 대해 사과한 것은 클린턴의 일본 내 미군 범죄에 대한 사과와 맥을 같이해 긍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필리핀 내 기지에 대한 정화작업 거부는 한강 독극물 폐기사건의 여파로 SOFA 개정시 환경조항 신설이 검토되고 있는 마당에 부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한편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3일 “주한미군의 비행(非行)에 대한 한국민의 분노가 SOFA 개정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며 “특히 한국인들은 SOFA가 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협정에 비해 차별적이기 때문에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소개했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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