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호황 설계사' 그린스펀, FRB의장 4회 연임

  • 입력 2000년 1월 5일 20시 00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6월로 임기가 끝나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73)을 4년 임기의 FRB의장에 재임명한다고 4일 발표했다. 이로써 그린스펀은 사상 처음으로 FRB의장에 4회 연임하게 됐다. 1987년 취임한 그린스펀은 사상 최장기 FRB의장 재임 기록을 이미 갖고 있다.

그린스펀은 상원의 인준도 무난히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이 전했다.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도 그린스펀의 노련한 금융정책 덕분에 미국 경제가 사상 최장기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그린스펀의 4회 연임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클린턴대통령이 이 시기에 그린스펀 재임명을 발표한 배경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미국 상공회의소의 경제분석가 스티븐 더먼은 “클린턴이 예상외로 빨리 그린스펀 연임을 결정했다”며 “이는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앨 고어 부통령을 돕기 위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린스펀은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이상 공화당) 클린턴(민주당) 행정부를 거치며 소신껏 금융정책을 결정해왔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대통령과도 심한 마찰을 빚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92년 대선 때 경기활성화를 위해 금리인하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그린스펀은 이를 묵살했다. 96년 대선 때는 클린턴 행정부가 역시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금리인하를 여러차례 요청했으나 그린스펀은 경기과열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금리를 오히려 인상했다.

그럼에도 미국경제가 107개월째 초장기 호황을 지속하자 그린스펀은 ‘미국 경제호황의 설계사’로 각광받게 됐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실업률이 6%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치한 그린스펀의 결정을 특히 높게 평가한다. 그동안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실업률이 6% 밑으로 떨어지면 노동시장이 경직돼 인플레가 야기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실업률이 6%대에 접근하면 금리를 인상해 경기과열을 막곤 해왔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첨단 정보기술(IT) 덕분에 미국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에 실업률 6%가 더 이상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며 금리인상에 반대했다. 오히려 그는 97,98년 아시아 중남미 러시아 금융위기로 세계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게 되자 세차례에 걸쳐 미국의 단기금리를 인하했다.

세계 경제가 지난해 회복된데는 그린스펀의 이같은 금융정책이 크게 기여했다고 경제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희성기자> lee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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