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노동자본가' 새 계급 등장…주식투자 열풍 영향

  • 입력 1999년 11월 2일 19시 48분


최근 15년동안 미국에서 나타난 주목할 만한 변화의 하나는 ‘노동자본가(worker capitalists)’의 등장이다. 노동자들이 주식을 보유하면서 자본가 같은 의식과 정치성향을 갖게 됐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직간접적으로 주식을 갖고 있는 미국 국민은 7600여만명. 전체 성인의 38.2%, 전체 가구의 43%다. 내년에는 8000만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주식보유자가 유권자의 절반을 넘을 날도 멀지 않았다.

미국의 민간 정책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는 한때 부자나 자본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주식보유가 대중에게 보편화되면서 노동자본가의 계급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1일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지적했다.

이들 노동자본가는 인종 성별 당파성과 무관하게 독립적 경향을 띠며 정치 지형을 빠르게 바꿔나가고 있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리처드 내들러 전미(全美)주주협회 사무총장이 작성한 보고서를 요약한다.

83년에 주식보유가구의 비율은 19%였으나 89년 31.6%, 95년 40.3%, 99년 43%로 급증했다. 계층 연령 직업에 관계없이 늘었다. 89년부터 95년 사이 △노동자와 농부의 주식보유율은 106% △연간소득 2만5000달러 이하의 가구에서도 80.4% △34세 이하의 연령층에서도 64%나 증가했다.

주식대중화에 가장 기여한 것은 소량의 주식을 다양하게 매입해 위험을 분산하는 뮤추얼 펀드 등 각종 간접투자기법의 발달이다. 주식에 직접투자하는 미국인은 89년 2700만명에서 95년에는 2740만명으로 늘었을 뿐이다.

노동자본가의 증가는 노사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77년에는 미국 전역에서 228건의 파업으로 120만명의 노동자가 일하지 않아 2120만 노동일수의 손실을 끼쳤다. 전체 연간 노동일수의 0.1%였다.

그러나 97년에는 파업건수가 29건이었고 33만9000명의 노동자가 일하지 않아 450만 노동일수의 손실을 냈다. 전체 연간 노동일수의 0.01%였다. 파업손실이 10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특히 노동자본가는 자본가적 정치성향을 갖는다. 분배보다 성장위주의 정책에 관심을 보인다. 사회복지예산을 늘리기 보다는 그 돈만큼 세금을 깎아 주기를 바란다. 교육이나 사회보장을 위한 정부의 투자에 반대하고 자본이득세 감면이나 노동생산성 향상 등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아진 것도 노동자본가 증가의 결과다.

램스뮤센연구소가 1월에 6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식투자자의 66.5%가 자본소득세 감면을 지지했다. 주식에 투자하지 않는 사람은 45.9%만 이를 지지했지만 전체 지지율이 과반수를 넘는 결과(53.8%)를 낳았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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