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의 민주화/대만-싱가포르]느리지만 꾸준한 개혁

  • 입력 1999년 10월 26일 20시 02분


대만과 싱가포르는 분단국가와 도시국가라는 특수상황에 놓여있다.

이것이 정치발전을 저해하기도 했고 정치안정을 가능케 하기도 했다.

양국은 정치안정이 국가생존에 필요불가결하다는 명분 아래 1당 장기집권 체제를 유지해 왔다.

대만은 리덩후이(李登輝)총통, 싱가포르는 리콴유(李光耀)전총리라는 절대적 지도자의 영도로 정치발전을 앞지르는 눈부신 경

제성장을 이루었다.

◇86년 첫 야당 탄생

▼대만▼

지금까지 3명의 총통이 모두 국민당출신이었다. 국민당은 49년 정부수립 이래 50년동안 집권해 왔다.

다음 총통은 내년 3월18일 직선으로 뽑는다. 13년째 총통에 재임중인 리덩후이는 3선을 금지한 헌법에 따라 내년 총통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내년 총통선거의 최종 후보등록은 연말께로 예정돼 있다. 국민당은 이미 롄잔(連戰)부총통을 후보로 확정했다. 야당 민진당은 전 타이베이(臺北)시장 천수이볜(陳水扁)을 내세운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국민당의 쑹추위(宋楚瑜)전 대만성장이 선두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쑹추위가 국민당을 탈당해 무소속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리덩후이가 “중국과 대만은 국가대 국가의 관계”라는 발언으로 중국을 계속 자극한 것도 ‘북풍’으로 안정희구세력을 결집시켜 롄잔의 저조한 인기를 높이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86년 민진당 창당은 대만 정치사에 일대 사건이었다. 정부수립 이후 첫 야당이기 때문. 49년부터 39년간 집권한 전 총통 장제스(蔣介石) 장징궈(蔣經國)부자는 줄곧 계엄령을 유지했다. 야당 설립도 금지했다.

그러나 계엄령해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르자 장징궈는 87년 계엄령을 해제하고 복수정당을 공식 허용했다.

그 후 91년 국민대회(총통선출기관)대표선거와 92년 입법원(국회)의원선거가 복수정당체제로 실시됐다. 94년에는 지방자치확대와 함께 처음 실시된 타이베이 시장직선에서 민진당 천수이볜이 당선됐다. 96년에는 총통 직선이 처음으로 이뤄졌다.

◇93년 대통령 직선

▼싱가포르▼

65년 말레이연방에서 분리독립한 이후 ‘싱가포르식 민주주의’를 유지해왔다.

초대총리 리콴유는 신생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국제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에 국민이 일사불란하게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가부장적 민주주의’의 정치체제를 갖추게 됐다.

리콴유는 ‘개발독재’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끊임없이 국민을 훈계하고 채찍질했다. 덕분에 허허벌판에서 출발한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는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서구적 민주주의’의 눈으로 보면 ‘싱가포르식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다.

집권 인민행동당(PAP)은 68년부터 80년까지 4차례의 총선에서 모든 의석을 휩쓸었다.

현재 의회 선출의석 83석(전체 93석)중 야당의석은 2석뿐.

그래도 민주화를 향한 걸음은 더디지만 계속되고 있다. 84년에는 낙선한 야당 후보중 최다득표자 1명에게 1석을 할당해 야당의 의회 진출을 보장하는 ‘야당육성법’이 도입됐다.

59년 싱가포르 자치령 시절부터 32년간 싱가포르를 이끈 리콴유는 91년 고촉통(吳作東)부총리에게 총리직을 넘겨주었다. 93년에는 처음으로 상징적 대통령을 직선했다.

다음 총선은 2001년. 그러나 ‘여당의 3분의 2 의석확보 저지’가 야당의 최대목표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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