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왜관교등 폭파]『피란민 있어 고민하다 명령』

  • 입력 1999년 10월 14일 19시 35분


미국의 AP통신은 지난달 30일 ‘노근리 학살사건’의 진상을 보도한데 이어 13일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50년 8월 경북 칠곡군 왜관교와 고령군 득성교를 폭파해 수백명의 피란민을 사망케 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미군 자료와 참전병사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작성된 AP통신 기사 요약.

미군 1기갑사단장으로 부임한 지 며칠 안된 호바트 게이 소장(83년 작고)은 낙동강 인근지역에서의 위장 북한군 격퇴 방안을 고심하던중 50년 8월3일 저녁 “24㎞ 서쪽에 북한군이 모여있다”는 보고를 받고 미리 폭약을 설치한 왜관교의 폭파를 지시했다.

참전병사들은 폭발과 동시에 교각들이 산산조각났으며 다리 위에 있던 수백명의 피란민들이 숨지거나 낙동강으로 떨어져 익사했다고 말했다.

미군은 다리를 폭파하기 전 경고사격을 하며 피란민들에게 돌아갈 것을 요구했으나 피란민들이 끊임없이 건너오는 바람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참전병사들이 전했다. 게이도 미군 전사(戰史)에 실린 글에서 “왜관교 위에 수백명의 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폭파명령은 정말 어려운 결단이었다”고 회고해 희생자가 많았음을 인정했다.

왜관교에서 40㎞ 하류에 위치한 득성교 폭파는 같은 날 오전에 단행됐다. 14전투공병대 소속이었던 캐롤 킨즈먼은 “부대원들이 득성교 폭파를 위해 이틀 동안 3000㎏ 이상의 폭약을 설치했다”며 “오전 7시1분 명령에 따라 다리를 폭파했으며 다리 위에 있던 민간인 수백명이 숨졌다”고 증언했다.

이날 이 부대 기록에는 득성교 폭파를 ‘작전 멋지게 완료’라고 평가한 대목이 남아있다.

당시 득성교 인근에 살던 김복종씨(73)는 “피란가던 이들이 돌아와 ‘미군이 다리를 폭파했다’고 외쳤다”며 “일부 피란민들은 낙동강을 헤엄쳐 건너다 익사했다”고 말했다.

다리 폭파 전날인 8월2일에는 1기갑사단 소속 미군이 왜관 인근에서 피란민을 가장한 북한군 5명으로부터 총격을 받자 이들을 비롯해 미군을 따라오던 한국 피란민 80여명을 사살했다고 미군 병사들은 말했다. 참전병사 로버트 러셀은 “지시에 따라 그들을 전멸시켰다”며 “사망자 중에는 위장한 북한군 10명 정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참전병사는 “당시 인민군을 발견한 기억이 없다”며 “인민군이 나타난 것은 4일 후인 7일경이었다”고 엇갈린 증언을 했다.

1기갑사단 병사들은 9월말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160㎞ 떨어진 철길에서 미군이 피란민을 향해 포격을 가해 수백명이 숨졌다고 증언했다.

〈워싱턴AP연합〉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