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금융계 빅뱅]美 '유니버셜 금융' 탄생 초읽기

  • 입력 1999년 8월 23일 19시 40분


미국 금융계는 유럽과 일본보다 한발 앞서 빅뱅을 겪었다. 작년 4월 한달 동안만도 시티코프와 트래블러스그룹의 합병, 네이션스 은행과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의 합병이 이뤄졌다. 작년은 그런 초대형 인수합병(M&A)으로 숨가빴다. 그러던 것이 올해 들어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렇다고 미국 금융계의 빅뱅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새 차원의 빅뱅을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뿐이다. 미국 금융계가 준비하는 새로운 빅뱅은 이(異)업종간 합종연횡이다. 종래의 빅뱅은 은행간 합병이나 증권사간 합병처럼 동(同)업종내 합병이었다. 은행의 이업종(특히 증권업) 진출을 금지하는 글래스­스티걸법 때문이었다.

그러나 1933년에 제정된 이 법은 연내에 폐기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메릴린치증권과 체이스 맨해튼은행의 합병설 등 굵직한 M&A 시나리오가 회자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김종근(金琮根)전문연구원은 “글래스―스티걸법이 폐지되면 은행+증권+보험+신용카드 업종을 망라하는 ‘유니버셜 금융기관’이 미국에서 탄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재무부는 작년 시티코프와 트래블러스그룹의 합병때 단서조항을 붙여 이업종간 합병을 묵인했다. 시티코프(은행)와 증권 보험 신용카드 회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트래블러스그룹의 합병은 미 정부가 글래스―스티걸법을 엄격히 적용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미국 은행들은 90년대 들어 대형은행간 합병으로 초대형은행을 탄생시켰다. 미국 금융계 빅뱅은 91년 케미컬은행이 매뉴팩처스 하노버은행을 인수하면서 촉발됐다. 이어 BOA가 92년 시큐리티 퍼시픽은행을 합병했다.

96년에는 케미컬은행이 또다시 체이스 맨해튼은행을, 98년에는 네이션스은행이 BOA를 합병했다. 미국 은행들은 합병을 통해 소규모 지역은행→중형은행→대형은행→초대형은행으로 거듭났다.

세계 금융계를 사실상 지배하는 미국 금융기관의 경쟁력은 M&A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과 일본 은행들의 M&A가 일차적으로 방어를 위한 것이라면 미국 은행들의 M&A는 공격적이다. 규모와 첨단 금융기법을 동시에 갖춰 세계를 공략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 금융메이저의 파워를 한국 정부는 98년초 외채만기연장 협상 때 통감했다. 단기외채 250억달러중 유럽이 50%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일본이었다. 미국은 14%에 불과했다. 그래도 협상은 미국의 JP모건과 체이스맨해튼은행이 주도했다.

이렇게 막강한 미국 금융계가 글래스―스티걸법 폐지 이후 또다른 빅뱅을 거쳐 어떻게 변신할 것인가. 세계 금융계는 그것을 주시하고 있다.

〈이희성기자〉lee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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