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영어를 공용어로』 주장 확산

  • 입력 1999년 8월 16일 19시 58분


일본에서 ‘영어 공용어론(論)’이 새로온 화두(話頭)로 떠올랐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어를 일본어와 함께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현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공감한다는 의견이 뜻밖에 많다.

영어 공용어론은 아사히신문의 국제문제 대기자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편집위원(전 미주총국장)이 6월 언론기고문을 통해 처음 제기했다. 97∼98년의 TOEFL시험에서 일본의 평균점수가 북한과 함께 아시아 최하위로 전락했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나온 직후였다. 후나바시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영어구사력 때문에 일본이 침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일본인의 낮은 영어구사력 때문에 국제회의에서 일본의 존재감과 발언력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장관과 관료가 거의 영어를 못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국제여론 형성에도 참가할 수 없다. 인터넷 시대에는 영어의 세계화가 가속화된다. 법률로 일본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해야 한다. 초등학교부터 영어를 가르쳐 대학영어시험은 TOEFL로 단일화해야 한다. 영어는 50년 뒤에 세계공통어가 된다. 암호해독과 같은 현재의 시험방식을 빨리 버려야 한다.”

반향은 컸다. 데라사와 요시오(寺澤芳男)전경제기획청장관 등 수십명이 “당신 의견에 100% 동감한다”는 편지를 후나바시에게 보냈다. 외부강연과 인터뷰 의뢰도 급증했다.

데라사와는 “일본이 지금까지는 돈으로 버텨냈으나 지금과 같이 영어실력이 형편없으면 앞으로 경제에서도 낙후한다”고 우려했다.

연구기관인 도호쿠(東北)산업활성화센터도 지난달 발표한 27개 항목의 일본개혁방안에 영어공용어론을 포함시켰다. 이 센터는 “10년후를 목표로 일본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 21세기의 세계화에 대응해야 한다”며 초당파적 의원입법으로 이를 법제화하라고 촉구했다.

공용어 채택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어교육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확산됐다. 다음달 21일의 자민당총재선거에 출마할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전간사장은 대학 입학시험에 TOE

FL을 도입하고 초등학교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토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19세기말 메이지(明治)정부 초대 문부상을 지낸 모리 아리노리(森有札)도 “일본어 대신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다. 45년 패전 직후에도 그런 주장이 나왔다. 확실히 일본은 지금 메이지유신과 패전에 이은 제3의 변혁기를 맞고 있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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