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帝징용 한국인, 전범몰려 23명 처형-27명 무기징역

  • 입력 1999년 8월 12일 04시 19분


일제치하에서 강제징용돼 포로 감시원으로 일하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인 전범’으로 몰려 처형되거나 무기수로 전락한 한국인. 석방 후에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보상 한 푼 못받고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잊혀진 사람들.

이들의 한 맺힌 역사를 11일 한국인 전범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학래(李鶴來·74)씨가 처음으로 증언했다.

이씨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10여년간 복역하다 55년 가석방된 한국인 27명 중 유일한 생존자.

이씨는 이날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도쿄(東京) 도신(同進)택시회사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전범으로 몰려 처형된 한국인은 23명이며 27명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며 처형자 23명의 명단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씨는 전범재판과 관련, “재판을 받을때 강제 징용된 한국인이라고 밝혔으나 재판부측은 입증서류가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일본측 변호사들은 한국인의 변호를 외면했다”고 폭로했다.

이씨는 “대부분의 징용 한국인은 일본군이 정한 포로대우 원칙에 따라 연합군 포로에게 노동을 시키고 환자에게 약을 투여하지 않았을 뿐인데 이를 연합군측이 제네바 협정위반이라며 기소했다”고 밝혔다.

일본정부는 최근까지 한국의 가족들에게 처형자들에 관한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으며 명단 공개도 거부해왔다.

이에 따라 이씨 등은 이국땅에서 ‘일본인 전범’ 신분으로 억울하게 처형된 한국인의 기구한 사연을 희생자 유족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이 명단을 작성했다.

이씨가 공개한 명단에 따르면 종전 당시 일본군 중장이었던 홍사익(洪思翊)씨만이 현역군인이었고 나머지 22명은 모두 일본에 강제 징용돼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통역원이나 군속으로 일한 사람들이다.

이씨가 공개한 명단에는 처형일시 및 집행장소 재판담당국가 소속부대 계급 주소가 기록돼 있다.

처형자의 직급은 △군인 1명 △군속 14명 △통역원 8명. 근무지는 △태국 10명 △인도네시아 4명 △중국 8명 △필리핀 1명이다.

일본은 42년 연합군 포로를 감시할 목적으로 영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 청년 2700명을 강제징용, 동남아전선과 중국으로 파견했다.

이들은 포로 수용소에서 통역 서무보조 취사 경계근무를 맡았다.

전범재판 후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하다 가석방으로 풀려난 한국인들은 91년 일본 정부의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에서 “형집행 당시 일본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보상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도쿄〓이병기기자〉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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