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곤감독 단편 「소풍」,칸영화제 심사委대상 수상

  • 입력 1999년 5월 24일 18시 51분


'소풍'의 한 장면
'소풍'의 한 장면
세계 영화 흐름의 풍향계이자 영화의 질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일컬어지는 칸 국제영화제. 한국영화는 칸 영화제의 높은 문턱을 넘는데 번번이 실패해왔지만 드디어 올해 우리 단편영화가 그 벽을 깼다.

단편경쟁부문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이은 심사위원 대상을 탄 ‘소풍’의 송일곤 감독(28). 그는 “영화를 함께 찍으며 고생한 스태프들과 영화를 하는 아들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폴란드 우쯔 국립영화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송감독은 이미 ‘오필리아 오디션’ ‘광대들의 꿈’ ‘간과 감자’ 등으로 국내 단편영화제를 휩쓸며 많은 팬들을 모으고 있다.

이번 칸 영화제 수상작인 ‘소풍’은 경제한파가 휩쓸고 간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담은 슬픈 초상화라 할 만하다. 빚더미에 오른 젊은 사업가와 그 가족의 동반자살을 그렸다. 주도면밀하게 동반자살을 준비하는 가장의 모습은 아이의 눈에 비친 따사로운 햇살, 엄마의 부드러운 자장가 등과 대비되면서 한결 비극적인 정조를 자아낸다.

“언젠가 신문에서 한 젊은 사업가 가족의 동반자살에 관한 기사를 읽었는데 그때 느꼈던 소름끼치는 폭력성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다. 가장이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겪었을 고통은 그저 지나치기에는 너무 거대했다. 이 영화를 통해 동반자살이 갖고 있는 폭력성과 그 폭력이 전개되어가는 과정을 최대한 절제된 감정으로 객관화해 보여주고 싶었다.”

만장일치로 ‘소풍’을 수상작으로 뽑은 5명의 심사위원들은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는 압축의 묘미를 잘 살렸고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좋았다”고 평가했다고.

서울예대 영화과 졸업후 95년 폴란드로 유학을 떠난 그는 지금까지 연출한 10편의 영화에서 폭력과 희생에 천착하는 일관된 작품세계를 보여왔다. 지난해 서울단편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탄 ‘간과 감자’ 역시 전쟁과 가난이 삶에 드리우는 암울한 그림자, 희생과 용서 등 묵직한 주제를 푸른 빛 영상에 세련되게 담아낸 수작.

“고교 3학년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전혀 다르게 각색한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의 ‘퍼블릭 우먼’을 보고 영화에 매료됐다”고. 유학이후 줄곧 폴란드 스태프와 영화를 만들어오다 모처럼 국내에서 만든 영화 ‘소풍’으로 이번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됐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