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의 안네 프랑크」피네간, 美소년과 E메일 펜팔

  • 입력 1999년 3월 9일 19시 53분


“안녕, 피네간. 지난주에는 옆집에서 기자 아저씨가 죽었어. 며칠전에는 젊은 애들이 자주 놀러가는 마을 중심지에서 폭탄이 터졌지. 이곳에서는 다들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두려워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단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사는 평범한 고등학생인 피네간 하밀(16)은 올해 초 코소보주 알바니아계 소녀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평화감시단의 일원으로 코소보에 다녀온 교회직원이 피네간에게 건네준 E메일주소로 메일을 띄운 것이 계기가 돼 펜팔을 시작한 ‘아도나’의 답장이었다.묘하게도 아도나의 나이가 피네간과 같았다. 그후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소년과 소녀는 석달째 꾸준히 소식을 주고 받고 있다.

흡사 2차대전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안네 프랑크를 연상케 하는 아도나의 E메일에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 소녀의 불안한 심리와 알바니아계가 겪고 있는 비극이 짙게 배어 있다.

“어제 식구들이 다 모여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어디로 도망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얘기했어. 여권도 다시 확인했어. 집을 떠나 산에서 숨어살 경우를 대비해 두꺼운 옷들도 마련해뒀어. 엄마 아빠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셨어….”

아도나는 전쟁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만 빼면 여느 10대와 다를바 없는 사춘기소녀임을 전해주는 글도 띄웠다.

“나는 그룹 REM이 가장 좋아. 셰어와 비틀스도 좋아해. 요즘은 파티가 그리워. 춤추는 걸 좋아하거든. 상황이 좋아지면 여행도 갈거야. 나는 학교에서, 사실은 주로 TV와 영화를 통해 영어를 배웠어.”

아도나와 E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학교 하키팀의 승부에만 관심을 쏟던 피네간은 국제문제에 관심을 쏟을 정도로 시야가 넓어졌다. 그는 아도나의 E메일을 들고 버클리 지역 라디오방송국을 찾아가 알바니아계 소녀가 겪고 있는 비극을 알렸다. 아도나의 사연은 곧 몇몇 지역방송에 의해 보도됐고 마침내9일 CNN방송이 E메일 내용을 소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가 빨리 와서 우리를 보호해줬으면 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셀 수조차 없어. 내가 성폭행당하거나 지난번 발굴된 시체처럼 갈가리 찢긴 채 죽는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어. 이 세상에 전쟁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피네간, 너는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를거야. 나도 너처럼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어. 코소보에서 아도나.”

▽안네 프랑크는 누구〓2차대전중 나치의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숨어 지내다가 결국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숨진 유태인 소녀. 42년 당시 13세이던 안네는 가족 및 다른 4명의 유태인과 함께 숨어 살다가 44년 게슈타포에 발각됐다. 그가 2년 동안의 비참한 생활을 기록한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전세계에 유태인의 불행을 생생히 전했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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