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요르단王 사실상 사망상태 …가족들과 작별인사

  • 입력 1999년 2월 5일 19시 52분


압둘라 왕세자와 다정한 한때
압둘라 왕세자와 다정한 한때
미국에서 임파선암 치료를 받던 후세인 요르단국왕(63)이 5일 위독한 상태로 귀국해 요르단 정국은 물론 중동평화의 앞길에 험로가 예상된다.

지병이 악화돼 지난해 6개월여 미국 미네소타주 로체스터 메이요병원에서 치료받은 그는 지난달 “병세가 호전됐다”며 일시 귀국했으나 병이 재발해 지난달 26일 다시 미국에 갔다. 그러나 골수이식수술이 실패로 돌아가 그는 “고국에서 최후를 맞겠다”며 5일 귀국했다.

요르단왕국의 왕권은 후세인국왕의 장남인 압둘라 이븐 후세인 왕세자(37)에게 이미 사실상 이양된 상태.

중동 각국과 미국은 중동평화를 떠받쳐온 ‘유능한 중재자’였던 후세인국왕이 사라질 경우 과연 중동평화가 흔들리지 않을지,요르단 정국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분위기다.

‘줄타기 외교의 달인’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로 불리는 후세인국왕은 46년간 요르단을 철권통치해온 중동지역의 최장기 집권자이자 아랍권에서는 드물게 대(對)이스라엘 포용정책을 취한 중동평화의 버팀목이었다.

젊은 시절 영국에서 잠시 유학하면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체득한 그는 때로 택시운전사로 변장해 여론을 수렴했으며 4번 결혼할 만큼 자유분방했다.

17세이던 1953년 왕위에 오른 그는 노련한 외교력과 뛰어난 정치감각을 무기로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요르단의 경제를 일으켰다.

몇차례의 전쟁과 암살 기도를 이겨내며 그는 여러 부족과 종교로 분열된 인구 4백만의 소국 요르단을 중동의 ‘중견국’으로 발전시켰다.

후세인국왕은 국내 팔레스타인 난민 세력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93년 아랍국으로서는 이집트에 이어 두번째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유연함을 보였다. 이 대가로 요르단은 미국의 경제지원을 얻어냈다.

미국은 중동정책이 어려워질 때마다 후세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난해 10월 워싱턴 근교 와이밀스에서 진행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암투병중인 후세인을 ‘구원투수’로 불렀고 협상은 타결됐다.

그의 뛰어난 정치감각은 후계자 선정에서도 잘 드러났다. 그는 정국불안을 우려해 65년 어린 장남 대신 동생 하산왕자를 후계자로 책봉했으나 지난달 25일 장남 압둘라로 전격 교체했다. 그후부터 요르단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는 압둘라는 육군 소장으로 군부내 인맥이 두터운 편이나 통치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국정 장악에는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더구나 하산왕자가 쿠데타를 일으킬 만한 실력이나 명분을 갖고 있지 않은데다 미국과 주변 아랍권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정성희기자〉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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