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부터 중장비까지』 국내기업41개 외국에 팔렸다

  • 입력 1998년 7월 26일 20시 49분


씨앗에서 중장비까지 거의 전업종에 걸쳐 국내기업들이 외국에 팔려나가고 있다. 크고 작은 회사들이 속속 외국기업 간판으로 바꿔 달면서 한국시장은 세계 유수기업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신라 롯데 힐튼 프라자 등 특급호텔들은 인수기업을 물색하기 위해 방한한 외국인들로 비수기에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본사가 26일 IMF이후의 국내기업 매각현황을 집계한 결과 이날 현재 매각이 결정된 국내 업체는 대략 41개. 이를 통해 국내에 유입됐거나 앞으로 들어올 외국자본이 총 60억달러(약 8조원)에 이르고 있다.

▼전업종이 다국적기업에〓업종별로 세계 상위권의 다국적 기업들이 속속 국내기업을 인수하고 있다. 제지 종자 자동차부품 등의 업종이 대표적.

제지의 경우 세계 1∼3위인 캐나다 아비티비, 미국 보워터, 노르웨이 노르케스코그가 한라펄프제지 신호제지 한솔제지 등으로부터 지분 또는 자산을 인수해 국내시장을 장악했다. 종자산업은 국내 1∼3위업체인 흥농종묘 중앙종묘 서울종묘가 모두 다국적 기업에 매각돼 산업 전체가 통째로 넘어간 상태. 이밖에 자동차부품은 캄코 한화GNK 등 5개사가, 화학은 한화바스프우레탄 효성바스프 등 6개사가 외국자본의 손에 들어갔다. 이처럼 국내기업의 해외매각이 업종을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진행되자 일부에서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지난달말 흥농종묘와 중앙종묘가 멕시코계 다국적기업 세미니스사에 매각됐을 때는 ‘식생활의 근간이 되는 씨앗까지…’라는 반응이 불거져 나왔다.

쌍용제지의 생활용품부문이 미국P&G사로 매각되는 등 이제는 일상생활의 구석구석에까지 외국기업의 ‘손길’이 닿을 전망.

▼자산매각과 합작해제가 주류〓매각방식으로는 지분매각 합작해제 자산매각 등이 주류. 그 중 특히 ‘구면(舊面)’인 합작 파트너에 지분의 전량 또는 일부를 매각하면서 영업을 양도하는 방식이 많았다. 이 방식을 적극 활용한 곳은 한화그룹. 한화바스프우레탄이 독일 바스프우레탄에 지분 50%를 1천2백억원에 넘기고 합작에서 손을 뗀 것이 대표적이며 한화NSK정밀 한화GNK도 각각 합작선인 일본정공 영국GNK에 지분을 매각했다. 한편 삼성중공업이 중장비부문을 스웨덴 볼보에 매각한 것을 포함해 신호제지 한화종합화학 등이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우량자산을 내놓는 ‘뼈를 깎는 아픔’을 겪었다.

▼기업 매각 묘안 백출〓외자유치가 최종 목표인 만큼 일부 기업들은 ‘외국손님’ 끌기 위해 나름대로의 아이디어 짜내기에 여념이 없다.

한솔제지의 경우가 대표적. 한솔제지는 1억7천만달러를 투자해 아비티비, 노르케스코그와 지분 33.3%씩 참여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한 뒤 신설 합작사에 자사의 신문용지부문을 10억달러에 매각할 예정. ‘적은’ 돈으로 ‘많은’ 돈을 끌어들이는 작전이다. 두산그룹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OB맥주의 맥주사업부문을 벨기에 인터브루와 공동으로 설립하는 합작사에 넘겼다. 이밖에 신세계가 프라이스클럽을 미국 코스코에 우선 임대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매각키로 한 ‘임대후매각’방식도절묘한아이디어로 꼽힌다.

▼‘고질라’는 어디로〓현재까지 진행된 기업매각 결과에 대해서는 “그렇고 그런 기업들만 팔아치웠다”는 반응이 대부분. 5대그룹의 계열사 매각이 부진한데다 매각된 회사들의 상당수가 각 그룹들이 ‘환부(患部)’쯤으로 여기고 있던 업체들이라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대상이 그야말로 알짜배기인 라이신 사업을 과감히 넘기고 매각대금을 그룹 구조조정에 활용한 것은 모범사례로 비춰지고 있다. 그러나 기업을 매각하더라도 현행 규정상 세금부담과 주식반대청구권, 노조반발 등 걸림돌이 많아 실익이 적거나 매각협상에 진통을 겪는 사례가 많이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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