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심씨의 안내로 정원에 있는 2개의 조그만 비석 앞에 섰던 일이다. 높이 60㎝ 가량의 비석에는 놀랍게도 한글로 ‘반녀니’ ‘져나니’라는 임진왜란 당시 끌려왔음이 분명한 여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역만리에 잡혀와 천비(賤婢)취급을 받았을 것이 분명한 두 여인의 한글 비석을 보는 순간 1대 심당길(沈當吉) 이래 심수관가(家)의 4백년 역사가 가슴에 와 닿았다.
▼한국도자기 일본 도래 4백주년 행사를 준비중인 14대손 심수관씨가 선조가 일본 땅을 밟은 후 이룬 도자기의 모든 것을 고국민에게 보고하는 전시회를 서울에서 갖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은다. 7월초에 열릴 전시회에는 ‘불만(히바카리)’이라는 이름의 심당길이 만든 찻잔도 진열된다고 한다. 흙 유약 등은 모두 조선에서 가져온 것이고 불(火)만 일본 것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 도공의 혼이 느껴지는 작품명이다.
▼“전시회 명칭을 ‘역대 심수관 보고전’이라고 붙이고 싶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의 와중에서 전해진 조선의 문화가 이국 풍토 속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고하고 “고국민의 칭찬도 받고 싶어서”라는 심씨의 설명이다. 심수관가의 명품 도자기를 볼 수 있는 기회이자 무고하게 잡혀간 수만명의 조선인 혼이 깃들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될 것이다.
임연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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