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韓 조기지원결정 안팎]『미국이 지휘한 오케스트라』

  • 입력 1997년 12월 25일 20시 29분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을 비롯한 13개국이 한국에 대해 1백억달러를 조기에 지원키로 한 것은 한국의 상황이 급박하다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번주 들어 뉴욕 월가에서는 이미 한국은 지불유예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급박했다. 한국이 무너지면 여파가 일본에 미치고 다시 그 파장은 중국과 동남아 등지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미국도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비관론자들의 전망이었다. 실제로 최근 뉴욕 증시의 주가도 불안한 하락세를 보였다. 미국은 이같은 우려를 심각한 것으로 판단,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까지 참석한 백악관 회의에서 조기지원 결정을 내렸으며 다른 국가들을 설득하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때문에 지원결정을 「미국이 지휘한 오케스트라」로 표현했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24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도와주는 것이 미국의 경제적 안보적 이익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하게 말하면「한국을 살려두는 것이 죽게 하는 것보다 미국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조기지원 결정은 또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신뢰의 표현으로 이해되고 있다. 김당선자는 이미 IMF의 조건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최근 정리해고제의 불가피성을 인정함으로써 분위기를 주도했고 이에 대해 미국이 조기지원으로 화답했다는 것이다. 국무부의 스탠리 로스 동아태 차관보가 22일 기자회견에서 『김당선자에게 기회를 주자』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특히 제2선에서 지원키로 한 50억달러 중 17억달러를 우선 내놓기로 한데 이어 나머지 33억달러도 조기 지원할 의사가 있음을 밝혀 「제2선에서의 조기지원 불가」라는 기존입장을 수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문제는 지금부터」라는 입장이다. 1백억달러 지원으로 한국이 급한 불은 끄게 됐지만 벌게 된 시간은 겨우 내년 1월까지 한달 남짓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정부가 한달여 동안에 주요 투자가들을 설득하고 재협상해서 상환기간 연장을 받아낼 수 있을지가 문제해결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미 정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한국에 위기극복의 고비가 될 기회를 준 셈』이라고 말하고 『이 기회를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김당선자와 새로 구성될 경제팀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김당선자와 새 경제팀의 위기관리 능력을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이재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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