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대사 망명]『그들을 찾아라』 긴장감 도는 카이로

  • 입력 1997년 8월 25일 20시 17분


任晟準(임성준)주이집트대사는 25일 장승길 주이집트북한대사가 지난해 8월 아들의 잠적사건 이후 외교행사에 잘 나타나지 않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고 밝혔다. 임대사는 이날 오전 전화통화에서 『장대사가 최근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 19일 자페르 엘베시리 이집트 기획 국제협력장관과 상호경제협력협정에 조인한 것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장대사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되는데다 소극적이고 온순한 성격이어서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한 점도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임대사는 이어 장대사 망명사건과 관련, 『서울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현지 북한대사관이나 이집트정부 어느 쪽에서도 이에 대한 발표가 없기 때문에 이곳 외교가는 잠잠한 상태』라고 현지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또한 북한대사관 내에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언론의 보도 이상으로 현지에서 확인한 사실이나 추가정보는 없다』면서 『현재 정보수집 노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가 왜 사라졌는지, 어디로 갔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이어 『이집트는 북한의 중동 아프리카 외교거점으로 장대사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곳을 맡은 것과 아들이 잠적했음에도 본국으로 소환되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북한지도층으로부터 신임이 두터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초대 이집트대사(94년7월∼96년3월)로 근무, 장대사를 잘 아는 鄭泰翼(정태익)외무부기획관리실장은 장대사가 대사로 부임하면서부터 여러가지 문제로 곤란을 겪어왔다고 말했다. 정실장에 따르면 장대사는 94년 7월12일 金日成(김일성)이 사망하기 전에 서명한 신임장을 제출, 이집트정부로부터 신임장 제정을 거부당했으며 이어 전임대사 시절에 있었던 쿠웨이트산 전자제품 밀수사건이 불거지면서 큰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또한 장대사는 작년 8월 아들의 잠적사건마저 터져 적극적으로 대사직을 수행하기가 힘들 정도였다는 얘기다. 정실장은 특히 장대사의 아들 철민군이 지난해 잠적 직후 직접 전화를 걸어와 『평양에서 왔는데 서울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느냐』고 망명의사를 타진했었다고 공개했다. 그러나 『당시 이집트와의 관계 등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 철민군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정실장은 밝혔다. 정실장은 또 장대사가 평소 철민군의 행실이 좋지 않은데다 서방세계를 동경해 아들의 외부출입을 통제하는 등 몹시 신경을 써 왔으나 결국 아들을 놓치고 말아 허탈해했다고 전했다. 〈문 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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