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 英선택/닮은꼴 국정방향]대처리즘 「복제품」

  • 입력 1997년 5월 3일 21시 42분


지난 70년대를 회상하는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자고 나면 파업이고 세금과 물가가 높아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다. 이른바 「영국병」의 고질적인 증세인 셈이다. 오늘날 이같은 「영국병」을 호소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파업으로 출근길이 막히는 경우도 없고 경제는 호황을 맞고 있으며 세금과 물가는 적정 수준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79년 총선에서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당수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달라』는 호소로 국민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소신은 사회주의적인 과거와 단절하고 시장경제로 돌아가며 사회복지를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개인과 기업이 중과세의 굴레에서 해방되고 정부의 개입은 최소한에 그쳐야 하며 노조세력은 제어돼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그의 소신은 3기 연임을 거치면서 공기업의 민영화, 시장경제 보장, 경쟁원리 도입, 노조활동 제한, 정부지출 축소, 부유층의 세금감면 등으로 구체화하면서 대처리즘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물론 대처리즘이라고 해서 모든 게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노조약화와 경쟁원리 도입으로 실업이 늘었고 사회보장이 축소되면서 하류계층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됐다. 그러나 대처총리의 「혁명」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오면서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하에 존 메이저총리 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지난 1일 총선에서 영국 국민들은 토니 블레어총리의 노동당에 대처에게 보였던 것 이상의 지지를 보이면서 메이저를 퇴진시켰다. 그렇다면 「대처리즘은 종언(終焉)」을 고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동당의 변신 자체가 대처리즘의 승리를 의미한다는 지적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94년 블레어가 노동당당수로 선출된 것은 이같은 변혁의 완결판』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블레어는 「새 노동당」의 기치를 내걸고 당헌4조의 「생산수단의 공동소유」 부분을 폐지, 노동당의 사회주의 요소를 청산했으며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가소유 재산의 과감한 매각과 시장경제의 충실화, 노조활동의 제한을 공약했다. 또 정부지출을 보수당정부보다 더욱 줄이고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즉 기존의 당노선을 포기하면서 대처리즘의 기조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 것이 승리의 요인이었다. 다만 블레어는 대처리즘의 폐해를 의식, 하류계층에 대한 소득세 감면과 고용증대, 교육과 보건서비스의 향상을 약속함으로써 질적으로 대처리즘을 보완했다. 결국 블레어정부는 대처리즘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용상으로 약간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당이건 보수당이건 영국은 당분간 대처여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런던〓이진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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