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라크 중동순방 결산

  • 입력 1996년 10월 27일 15시 03분


「李奇雨기자」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의 중동 순방외교는 단지 「수사(修辭)의 과시」 「말의 성찬」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외신의 표현대로 「실 한올」에 의지하고 있는 중동 평화협상의 돌파구를 열 전기를 마련해줄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먼저 그의 중동방문에 대한 아랍과 이스라엘 진영의 상반된 반응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시라크는 「중재자」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중동평화협상이 이스라엘에 치우친 미국의 중동정책과 이에 따른 아랍의 피해의식 때문에 좌초위기에 놓여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스라엘은 그에게 「역(逆)차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어쨌든 그는 이번 중동방문을 통해 아랍인들에게는 드골 이후 가장 인기있는 유럽의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아랍 신문들은 그에게 「평화의 사도」 「중세 기사도 정신의 현현(顯現)」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아랍 언론들도 아랍인의 「진정한 친구」인 그가 이스라엘측으로부터 공정한 중재자로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그가 과연 중동에서 유럽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유럽연합(EU)의 리언 브리튼집행위부의장은 25일 『중동에서 미국과 유럽의 영향력 경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침을 놓음으로써 불협화음의 일단을 드러냈다. 그에게는 아랍진영의 대부격인 시리아가 그의 중재노력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게 유일한 위안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는 그의 외교적 행보가 구체적인 결실을 맺을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 다만 외교전문가들은 미 행정부가 대선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시점을 택해 중동에서 프랑스, 나아가 유럽의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하고자 한 「타이밍」만은 절묘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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