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 주역(周易) 열풍이 불고 있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시군(市郡) 단위 문화원에 가면 주역 강의 없는 곳이 없다. 각종 문화센터에서 마련하는 인문학 강좌에서도 주역은 인기 강좌 가운데 하나다. 주역 해설서도 수십 종 나와 있는데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 책도 있다.
곧 인공지능(AI)이 정신세계와 지식세계까지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는데 고조선 단군 할아버지보다 더 오래된 주역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세월이 아무리 지났더라도, 앞으로 지나가더라도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 없고 주역은 그 인간 본성에 대해 수천 년 쌓아온 지혜의 정수를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중일 한자 문화권에서 주역은 ‘이기적 유전자’ 저자 리처드 도킨스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사회적 유전자인 밈(meme)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역을 아예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주역을 아는 사람 가운데 이 책을 동양 최고(最古)이며 동시에 최고(最高) 철학서로 꼽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동양, 그 중에서도 한중일 지식인 그리고 민중에게까지 주역이 끼친 영향은 넓고 깊다.
그런데 정작 주역이 어떤 책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막연하게 점 치는 책 혹은 동양철학의 시원(始原) 쯤으로 생각한다. 좀 더 아는 사람은 공자가 주역을 즐겨 읽어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떨어졌다는 사기(史記) ‘공자세가’의 ‘위편삼절(韋編三絶)’ 고사를 아는 정도다.
이 글은 주역 내용의 주석이기보다는 주역이라는 책, 그 자체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주역 해석은 워낙 다양하고 심오해서 간단한 칼럼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필자의 얕은 지식으로는 더욱 더 어림없다.
주역에 대한 주석서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후 한나라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에서 수많은 종류가 나왔다. 그런데 정작 주역 책과 저자에 대한 해설서는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다. 그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책 ‘주역의 탄생’ (이봉호, 파라아카데미, 2021)은 이전의 학문적 성과를 담고 있으면서 일반인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체와 내용으로 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주역이라는 ‘책 자체’ 이야기를 서너 회에 걸쳐 하고자 한다.
◆주(周)는 주나라 周? 혹은 두루 周?
주역은 언제 쓴 책일까. 주역은 과연 주(周)나라 역(易)이란 뜻일까. 만약 아니라면 주역 말고 다른 역(易)도 있다는 말인가.
일반적 인식으로 주역은 주나라 역이다. 주역 경문의 이해를 돕기위해 쓰여진 역전(易傳)편 가운데 총론편인 계사전(繫辭傳)에는 “복희씨(포희씨)가 8괘를 그렸고, 역이 은나라 말기 주나라 덕(德)이 흥할 때 일어났다”는 문장이 있다. 이를 근거로 사마천은 “주나라 건국 초기 문왕이 8괘를 중첩해 64괘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자(朱子) 역시 주를 주나라로 해석한다.
그런데 주나라 이전 하(夏)나라에도 역이 있었고 은(殷)나라에도 역이 있었다. 이를 각각 연산역(連山易), 귀장역(歸臧易)이라고 부른다. 주역이 주나라 역이라면 연산역은 하역, 귀장역은 은역이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데, 그렇지 않다.
한나라 대학자 정현(鄭玄)은 주를 ‘두루 주(周)’로 보았다. ‘두루 완비돼 갖추지 않음이 없다(周普)’고 해석했다. 연산역은 산들이 첩첩으로 이어져 끊이지 않은 것을 형상화했고, 귀장역은 만물이 그 속에 감추어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세 왕조 구분이 아니라 세 종류의 다른 역이라는 뜻이다. 현대 학자들도 주역 성립 시기에 대해 합의된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역(易)은 도마뱀 모양? 혹은 일(日) + 월(月)?
한나라 학자 허신이 지은 인류 최초 문자 사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역(易)은 도마뱀을 형상화한 것으로 풀이했다. 도마뱀은 환경에 따라 자유롭게 피부색을 바꾸는데 우주 삼라만상이 변화하는 것으로 상징했다는 말이다. 역의 영어 번역이 ‘Book of Changes(변화의 책)’인 점과 일맥상통한다.
易의 글자 모양을 따라 일(日)과 월(月)이 결합한 글자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역시 설문해자 뜻풀이로 일월이 역이 된다. 음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했다. 음양이 단순히 그늘과 햇볕 같은 자연현상을 넘어 철학적 의미를 지니게 되면서 역은 일월, 즉 음양이 결합해 더욱 변화라는 심오한 뜻을 지니게 된다.
새의 형상을 본떴다는 해석도 있다. 새 조(鳥) 자의 갑골문 글자와 거의 흡사하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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