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과 화이트, 짜장면과 짬뽕…. 그리고 남(男)과 여(女), 혹은 여와 남. ‘개취’(개인취향)일 뿐인 각기 시선에 성적(젠더·gender) 기준과 잣대를 들이댈 이유는 전혀 없다. 생물학적으로 다른 존재들일지언정,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자의 취향대로다. 두 남녀기자가 매주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적어도 눈치 보는, ‘빨아주기’식 기사는 없다. 엔터테인먼트 각 분야 담당기자들이 ‘갈 데까지 가보자’고 작심했다. 가장 공정하고 정정당당한 시선을 유지하자며.
194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정한 남자 자보와 연인 일로나가 운영하는 작은 레스토랑에 피아니스트 안드라스가 찾아온다. 안드라스는 일로나에게 첫 눈에 반하고, 직접 작곡한 노래 ‘글루미 선데이’를 선사한다. 그렇게 두 남자와 한 여자는 함께 사랑한다. ‘글루미 선데이’는 엄청난 인기를 얻지만 노래에 빠진 사람들은 연이어 자살하고, 부다페스트는 독일 나치에 점령당한다.
● 히트다 히트
일찌감치 살펴보지 못했던 이야기. 이제야 챙겨보고는 아차 싶었다. 장면은 장면대로, 대사는 대사대로, 진한 감성이 되어 남았다.
영화는 멜로영화라는, ‘진부한’ 틀로 묶인다. 여기서 ‘진부함’이란, 남녀간 사랑의 우울한 비극과 그 파국의 이야기로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물론 이야기는 실제로 얼마간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듯, 끝없는 감성의 흐름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 두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 “나를 채워주는 것”과 “내가 갈망하는 것” 사이의 갈등이 숨어 있을 법하지만, 영화는 이 같은 ‘진부한’ 편견을 깨준다.
그 편견과 선입견의 벽을 쓰러뜨리는 건 인간의 이야기인 덕분이다. 한 겹 멜로의 장막을 벗겨내면서 다가오는 인간의 이야기. 결국, 여기, 인간이 있다. 세상의 단순한 상식적 시선 속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들의 사랑은 존엄한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애정이다. 그리고 이들이 맞닥뜨리는 파국도 거기로 향하기 위한 과정으로 비친다.
온전한 삶을 꿈꾸는 이들의 일상을 침범하는 세상의 갖은 부조리와 탐욕을 목도하는 현실. 대체 인간의 존엄이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게 하는 비극적 현재. 여전히 많은 이들이 희망하는 존엄의 삶은 그리도 멀고 먼 것일까.
영화 속 주인공들의 파국은 어쩌면 타인을 위한 희생과 저 깊숙이 쟁여둔 사랑이 아니고서는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은 가슴을 후벼 파고야 말았다.
‘우울한 일요일’에 딱 보면 좋을 만하겠다. 까닭 모를, 아니 이제는 그 까닭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버리고 난 뒤 찾아온 우울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줄 수도 있겠다 싶다. 재개봉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 평점 아이콘, 이렇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