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예술을 지향했지만 퇴폐 뒤섞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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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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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는 나는 의식있는 관객일까 또 다른 변태일까

위부터 ‘움’, ‘내가 사는 피부’, ‘하울링’
위부터 ‘움’, ‘내가 사는 피부’, ‘하울링’
지난 호에 이어 최근 국내 개봉한 영화를 둘러싼 궁금증을 혼자 묻고 답하는 ‘셀프 Q&A’.

Q. 최근 개봉한 ‘움(Womb·자궁)’이라는 독일 영화를 보곤 소스라쳤습니다. 여인은 사랑했던 남자가 사고로 죽자 그의 체세포를 복제해 자신의 자궁 속에서 길러낸 것도 모자라 청년으로 성장한 이 복제인간과 사랑을 나눕니다. 일부 평론을 보니 ‘복제인간이란 소재를 처절한 사랑 이야기로 풀어낸, 인간의 근원적 존재론에 대한 작품’이라고 해석하던데요. 저는 무척 보기에 불편했습니다. 이 영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A. 혼란스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이 영화, 저질입니다. 딜레마적 상황을 매우 쓸쓸한 무드를 통해 풀어내면서 ‘사랑과 존재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이고도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려 했습니다, 라고 말하면 근사해 보이겠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과 고독과 원죄가 뒤섞인 등장인물의 움직이는 내면을 보여주는 통찰력이 부족해 그저 찝찝하기만 한 영화가 돼 버렸지요.

‘사랑’과 ‘집착’이 종이 하나 차이이듯 ‘예술’과 ‘퇴폐’도 그 경계를 알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지난해 말 국내 개봉한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 ‘내가 사는 피부’를 볼까요? 딸이 성폭행당한 뒤 숨지자 딸을 유린한 남자를 납치해 여성으로 성전환시킨 뒤 사랑을 나누는 성형외과 의사의 이야기라니! 한 지인은 ‘이 영화를 보고 감명받은 나는 변태인가요, 의식 있는 관객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져 왔습니다. 저는 유식하게 답변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인간의 본능과 욕망에 대한 근원적 탐구를 멈추지 않는 존재론적 변태임에 틀림없다”고요. 결국 변태란 얘기지요.

Q.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 ‘하울링’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지난해 ‘푸른소금’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연기가 예전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A. 여전히 송강호는 한국 최고의 배우입니다. 다만 그의 출연작들을 살펴보면 재미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9년 ‘박쥐’부터 2010년 ‘의형제’, 2011년 ‘푸른소금’을 거쳐 올해 ‘하울링’에 이르기까지 송강호는 각각 김옥빈 강동원 신세경 이나영이라는 핫(hot)한 젊은 스타들의 파트너로 출연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이는 젊은 배우들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시도라기보다는 톱 배우가 고심 끝에 선택한 결과라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겁니다. ‘복수는 나의 것’(2002년)부터 ‘살인의 추억’(2003년), ‘효자동 이발사’(2004년), ‘남극일기’(2005년), ‘괴물’(2006년), ‘우아한 세계’(2007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까지 송강호는 매번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놀라운 변신을 거듭해 왔습니다. 하지만 40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세대의 관객과 소통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겠지요.

그러나 그가 젊은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영화들은 예외 없이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젊은 여배우들과 명확한 극 중 관계를 설정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나영, 신세경의 애인으로 나올 수도, 아버지나 고모부로 나올 수도 없지만 극 중에서 이들과 묘한 성적(性的) 긴장의 끈을 유지해야 하는 모호한 상황을 관객은 명확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지요.

성격파 남자배우의 ‘회춘(回春)’은 참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관객은 그들이 젊은 여배우들과 엮이는 걸 마뜩잖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미 관객 모두의 연인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죠.^^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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