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병만 씨 자전에세이 출간 하루 만에 2쇄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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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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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꿈꾸는 거북이… 느려도 지치진 않습니다”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하지메마시테!(‘처음 뵙겠습니다’를 뜻하는 일본어)”

10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공개홀 출연자대기실 6번방 문을 열자 일본어가 먼저 들렸다. ‘달인’ 개그맨 김병만 씨(36)가 일본인 강사에게 일본어를 배우고 있었다. 개그맨 후배들과 12월 일본에서 소극장 코미디 공연을 하려고 준비 중이라 했다. 김 씨가 “뜻도 모르고 대사를 외우기만 한다면 연기의 느낌을 살릴 수 없다”고 주장해 후배들까지 강습에 동참했다. ‘달인’에서 수제자 역할로 나오는 노우진 씨(31)는 옆에서 단어시험을 보고 있었다.

KBS ‘개그콘서트’의 최장수 코너 ‘달인’의 주인공이자 SBS ‘김연아의 키스&크라이’에서 피겨스케이터로 활약하는 그가 자전 에세이집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실크로드)를 출간했다. 7전 8기 끝에 공채 개그맨이 되고 다시 긴 무명생활을 거쳐 달인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11일 7000부를 내놓자마자 동나 2쇄 인쇄에 들어갔다. 책 제목은 지난달 초 행정안전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화제가 됐던 발언에서 따왔다. “저는 거북이입니다. 언제 도착할지는 모를지언정 쉬거나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트레이닝복에 등산화 차림으로 기자를 맞은 그는 “수시로 달인 연기를 연습해야 해서 옷차림이 이렇다”며 쑥스러워했다. “지금은 샌드아트와 3m 길이의 채찍으로 오이 자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연기마다 연습기간이 다르니까 두 가지 이상을 한꺼번에 합니다.”

인터뷰 도중 달인의 팔에서 멍 자국이 보였다. 피겨 공연을 하다 다쳤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달인의 팔에서 멍 자국이 보였다. 피겨 공연을 하다 다쳤다고 한다.
매일 7시간 이상을 ‘달인’과 ‘키스&크라이’에 투자한다고 했다. 그의 연기에서 시청자들이 ‘땀 냄새’를 느끼는 이유다. ‘김병만 코미디’를 학술적으로 분석한 신수아 씨는 석사학위 논문에서 “설문조사 결과 상당수 시청자가 철저한 준비와 부단한 노력을 김병만 코미디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고 분석했다.

1주일에 한 번씩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 달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김병만 코미디’는 바닥부터 정상에 오른 개인사의 궤적과 맞닿아 있다. 전북 완주군 화산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공사판에서 일했다. 스무 살에 30만 원을 들고 상경해 스물일곱에 KBS 공채 개그맨이 되기까지 서울예전 입시 6회, 백제대 입시 3회, MBC 개그맨 공채시험 4회, KBS 개그맨 공채시험에 3회 떨어졌다. 목욕비가 없어 공중화장실에서 몰래 몸을 씻다가 경비원에게 수모도 겪었다. 딱 죽고 싶어 수면제를 40알 사 모은 적도 있다. 그는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지난해 KBS 코미디부문 연예대상을 받았다. 개그계의 달인이 된 것이다. ‘키스&크라이’를 위해 3월 피겨스케이팅까지 시작한 뒤로는 하루 수면시간이 2∼3시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피곤하지 않고 항상 설렌다”고 했다. “매니저가 못 견디겠다고 할 정도로 바빠요. 무명일 때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박수치는 사람이 적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달려가면 많은 분이 박수를 치며 기다리고 있으니 힘이 날 수밖에요.”

키스&크라이 출연 이후 정강이에는 스케이트 날에 베인 상처가 훈장처럼 남았다.
키스&크라이 출연 이후 정강이에는 스케이트 날에 베인 상처가 훈장처럼 남았다.
무지막지한 연습량은 그의 몸 곳곳에 다양한 상처를 남겼다. 양 발목의 복사뼈 아래 물렁뼈가 모두 부러져 뼈가 조각 난 채로 다닌다.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지만 무리하면 걷기 힘들 정도로 통증을 느낀다. 오른쪽 셋째 손가락은 약간 휘었고, 정강이에는 스케이트 날에 베인 상처가 여럿이다. 피겨 공연을 하다 다친 오른팔은 멍투성이다. 하지만 무대에선 아픈 내색을 하지 않는다. “저는 웃음을 주는 사람이니까요.”

그는 아이디어맨이다. 2007년 12월 이후 3년 9개월 넘게 ‘달인’ 코너를 이끌면서도 후배들에게 이런 저런 개그 소재를 나눠준다. 개콘의 인기 코너 ‘생활의 발견’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비결은 없고 즐기면서 해요. 내일까지 안 하면 굶어죽는다는 식의 각오는 없어요. 그 대신 누구를 만나든 아이디어로 연결할 궁리를 합니다. 기자를 만나니 ‘16년 동안 특종만 잡아온 오보 김병만 기자’가 떠오르네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동영상 촬영을 해 둔다고 했다. 동작까지 정확히 기억하기 위해서다.

달인의 손가락은 휘었고, 마디는 굵어졌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달인의 손가락은 휘었고, 마디는 굵어졌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0대 후반부터 공사장에서 직접 집을 지었던 그는 요즘 건국대 건축공학과 대학원에서 구조 설계를 배우고 있다. 자신만의 개그 전용관을 짓기 위해서다. 지도교수인 안형준 교수는 “건설현장에서 일한 경험 덕분인지 이해가 빠른 편이다. 스케줄이 많아 수업에 못 오면 오전 3∼4시까지 개인교습을 받는 등 열의가 강하다”고 말했다.

달인 김병만은 영원한 희극배우로 남고 싶다고 했다. “찰리 채플린과 시무라 겐, 기타노 다케시를 세계인이 기억하듯 외국사람도 대한민국에 김병만이라는 희극배우가 있었다고 기억하게 만들고 싶어요. 묘비명도 생각해뒀는데, ‘잘 살고 잘 죽었다’, 어때요?”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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