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오디션 열풍… 본보 김진 기자 ‘슈퍼스타K 3’ 참가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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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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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삭주부까지… 1만8000명과 함께 줄을 섰다. 3시간 기다려 오른 한평반 무대, 현기증이 났다. 기타치며 노래를 불렀다, 찌푸려진 심사위원들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 “잘 들었습니다” 짧은 멘트. 4분만에 끝난 3주간의 도전 “40명 안에 들게 될까?” 》
기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머릿속에선 노래 가사가 뒤섞였다. 대학 시절 뮤지컬 동아리 활동을 하며 무대에 서는 일엔 단련이 됐다고 자신했는데, 익숙한 가사마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긴장한 탓도 있지만 주변의 소음이 컸다. 앞서 무대에 올라 오디션을 보고 있는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 “짧게요” 하는 냉랭한 심사위원의 목소리, 다른 부스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곧 ‘F부스’ 안에서 들리던 소리가 그쳤다. 잔뜩 풀이 죽은 남자가 식은땀을 닦으며 나왔다. 이제 들어갈 차례였다.

10일 오전부터 진행된 ‘슈퍼스타K 3’ 대전지역 2차 예선에는 1차 예선을 통과한 1만8000여 명이 응시했다. 기자는 응모 서류에 동아일보 소속임을 밝히고 오디션에 참가했다. 오디션이 열리는 컨벤션센터에서 약 1km 떨어진 엑스포 공원까지 주변 도로는 주차장이 됐다. 응시자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만든 줄은 컨벤션센터 밖을 몇 겹이나 둘러쌌고, 2520m²(약 760평) 규모의 컨벤션 전시홀 안은 여기저기서 노래 연습을 하는 도전자들과 이들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로 꽉 찼다. 어깨를 부딪치는 일은 예사였다. 다리에 걸려 넘어질 뻔한 사람도 많았다. 화장실에 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대기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 14개의 오디션 부스, 꿀벌처럼 노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100여 명의 스태프.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배정받은 F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한 평 반 남짓한 공간에 한 대의 카메라와 두 명의 심사위원이 쳐다보고 있었다. 긴장하지 말라는 배려에서인지 부스에 낸 구멍을 통해 밖에서 카메라를 비추고 있었지만 도움은 되지 않았다. 심사위원석엔 유명한 가수가 앉아 있을 줄 알았는데 못 보던 얼굴이었다. 뒤에 알아보니 2차 지역 예선의 심사위원은 부스당 두 명이며 이 중 1명은 주최 측인 엠넷의 음악프로그램 담당 PD나 음반·음원 유통 관련 PD, 나머지 1명은 작가가 맡도록 돼 있었다.

기타를 쳐야 하는데 의자가 없었다. “시작하세요.” 심사위원이 재촉했다. 잠시 고민하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호흡을 하고 G코드를 잡았다. 리처드 막스의 노래 ‘나우 앤드 포에버’를 부르며 심사위원들을 흘깃 바라봤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집중해서 듣는 것인지 노래가 길어 언짢은 것인지 헷갈릴 즈음 심사위원이 “잘 들었습니다”라며 노래를 끊었다. 얼굴은 빨개지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다른 노래도 들어보고 싶네요.” 기운을 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부르려는데 다시 힘을 빼는 소리가 들렸다. “후렴만요.” 후렴 몇 마디를 부르고 나니 개인기를 주문했다. 급한 대로 가수 이현우의 성대모사를 했다. 오디션 내내 굳은 표정이었던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웃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4분. 3시간 내내 줄서서 기다렸는데 정작 무대에 올라 기타 치며 노래하고, 후속곡 후렴 부르고, 성대모사까지 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엠넷 측에서 지원자 1인당 공식적으로 할당한 시간은 100초였다. 한 소절 부르고 부스 밖으로 냉정하게 내몰린 지원자도 부지기수였다. 그제야 왜 오디션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 예외 없이 허탈한 표정들을 지었는지 이해가 갔다. 3주 전 1차 예선을 위해 손수제작물(UCC) 동영상을 준비했던 기억, 취재하고 기사 쓰는 짬짬이 노래와 기타 연습을 했던 기억이 밀려왔다.

‘슈퍼스타’를 꿈꾸는 1만8000여 명이 오디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대전 지역 2차 예선 현장은 지원자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엠넷 제공
‘슈퍼스타’를 꿈꾸는 1만8000여 명이 오디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대전 지역 2차 예선 현장은 지원자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엠넷 제공
옆 부스에서 앳된 남자 중학생 도전자가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어릴 적부터 가수가 꿈이었다는 윤연정 군(14·운호중1)은 이른 아침 충북 청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 “떨려서 배를 움켜잡고 노래를 불렀어요. 합격할지는 잘 모르겠고요.” 임신 9개월째인 전성진 씨(33·여)는 부른 배를 한 손으로 지탱하며 부스에서 나왔다. “배 속에 있는 딸에게 엄마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승해서 5억 원의 상금을 받으면 집을 사고 싶다는 그녀는 BMK의 ‘아직 못다 한 이야기’를 불렀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게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통념과는 달리 주최 측에서 섭외해 모셔온 ‘세미프로’ 도전자들도 있었다. 걸그룹처럼 짧은 치마를 입고 가야금, 플루트, 건반, 드럼, 첼로를 연주하는 6인조 여성 국악밴드 ‘이리스’는 ‘그룹 부스’에서 오디션을 봤다. 자우림의 ‘매직 카펫라이드’를 국악 버전으로 구성지게 부른 보컬 지현아 씨(26)는 “담당 작가에게서 출연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왔다. 우리는 대전에서 주로 공연하는 밴드”라고 소개했다. 7인조 주부 밴드 ‘까치소리’도 대전에서 4년째 활동하고 있는 그룹이다. 밴드의 리더인 김주화 씨(46·여)는 “길거리 음악 공연이나 음악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프로의 작가에게서 출연 제의를 받고 참가했다”고 말했다. 엠넷 측은 “지역 명물 추천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 3사와 케이블 채널이 방송 중이거나 올해 방송 예정인 일반인 대상 오디션 프로는 9개. 다음 달엔 연기자를 선발하는 ‘기적의 오디션’이 SBS에서, 영국의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한국 버전 ‘코리아 갓 탤런트’가 tvN에서 시작된다. 오디션 프로의 원조인 ‘슈스케’는 지난해 시즌2 참가자가 134만6402명이었다. ‘슈스케3’의 참가자를 포함해 9개 오디션 프로의 응모자를 모두 합하면 200만 명을 훌쩍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환풍기 수리공에서 스타덤에 오른 허각처럼 보통 사람들이 이뤄낸 소수의 성공 신화들이 ‘나도 스타가 될 수 있다. 늦지 않았다’는 희망을 만든 것 아닐까.

그러나 기자를 포함해 이날 도전한 1만8000명 중 합격 통보를 받을 사람은 40여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일상의 도전에 직면해야 한다. 대전지역 예선을 통과한 40여 명도 나머지 7개 도시와 해외 예선을 통과한 사람들과 두 차례 더 겨뤄야 8월 12일 시작하는 슈스케3 생방송 무대에 설 수 있다. 엠넷은 이날 오디션 결과를 정리해 16일 합격자에게만 전화로 통보할 예정이다.

대전=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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