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스크린은 꽃보다 아름다운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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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0일 07시 00분


관객은 왜 그레이 로맨스에 열광할까

노년의 사랑·이별 담은 ‘그대사’ 장기 흥행
이별을 통해 보여주는 깊이 있는 사랑에 주목
결국 가족의 울타리…가족단위 관객에 환영

노년층의 아름다운 사랑과 아픔을 그린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촉촉이 적시고 있다. 맨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로맨틱 헤븐’, ‘세상의 모든 계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노년층의 아름다운 사랑과 아픔을 그린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촉촉이 적시고 있다. 맨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로맨틱 헤븐’, ‘세상의 모든 계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별은 또 다른 사랑이다. 봄철 극장가에 아름다운 이별의 사연들이 넘쳐나고 있다. 흔히 봤던 사랑하는 남녀의 눈물 섞인 이별 이야기가 아니다. 이별이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거나 혹은 사랑의 진정한 완성이란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중년 혹은 노년의 사랑을 그린 영화들은 세대를 관통하는 잔잔한 정감으로 젊은 관객에게도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 이별 영화 넘쳐난다

요즘 극장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는 ‘그대를 사랑합니다’(감독 추창민·이하 그대사)이다. 이순재 윤소정 송재호 김수미 등 베테랑 중견 배우들이 주연한 이 작품은 노년에 찾아온 새로운 사랑과 진한 가족애 그리고 이들이 겪는 이별을 담담하지만 진한 감성으로 담았다. 만화 강풀의 동명 원작부터 연극이 연속 히트한 데 이어 스크린에서도 2월17일 개봉 뒤 입소문을 타고 장기 흥행 중이다. 27일까지 122만7000여 명을 동원한 ‘그대사’는 개봉 초만 해도 막강한 마케팅 능력을 앞세운 상업영화들에 밀려 상영관을 잡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층이 늘어났다.

24일 개봉한 ‘로맨틱 헤븐’(감독 장진)은 부부, 엄마와 딸, 할아버지의 첫사랑까지 사랑과 이별로 얽힌 여러 관계에 주목한 영화다. 천국으로 먼저 떠난 사람과 그들을 그리워하는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랑의 감정은 세대와 시간, 심지어 죽음과도 상관없이 계속 진행된다는 메시지를, 장진 감독은 유쾌한 화법으로 풀어냈다.

이별은 곧 사랑의 깊이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4월21일 개봉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감독 민규동)은 가족의 버팀목인 엄마가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뒤 서로에게 무심했던 가족이 사랑을 확인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1996년 노희경 작가의 동명 드라마로 방송된 이후 이별 드라마의 대명사로 통한다.

이별은 끝이 아닌 시작이란 사실에 주목한 외화들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24일 개봉한 ‘세상의 모든 계절’은 노년의 부부가 겪는 사계절을 통해 이별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 같은 날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히어 애프터’는 이별을 초월하고 싶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후 세계의 판타지를 그렸다.

● ‘다른’ 이별 이야기, 왜 인기인가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이별을 매개로 사랑의 깊이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데 있다. 젊은 남녀의 사랑에 익숙해져 이제는 싫증난다고 생각하는 관객으로서는 이별을 통해 보여주는 다른 사랑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랑과 이별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중년 혹은 노년이란 점에서 더 신선하다.

‘로맨틱 헤븐’의 장진 감독은 “자극적인 시대에 순애보적인 감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라며 “특히 영화 속 순정은 TV드라마가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밀도 있다”고 말했다.

‘그대사’는 이런 분위기를 대변하는 대표작이다. 노년의 사랑, 이별, 죽음 등 그동안 영화 소재로 전면에 다루지 않고 주변에만 존재했던 코드들을 내세워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대사’는 2월에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3월 말에도 주간 박스오피스 톱5 안에 들었다.

● 이별도 사랑도 결국 가족

이별도 사랑도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일어날 때 울림이 더 크다. 이별 코드를 택한 영화들도 결국 가족 안에서 이야기를 푼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민규동 감독은 “일상 속에서 큰 의미가 없어 보인 것들이 한 가지 변화로 인해 커다란 갈등으로 다가오고 그 상황 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소통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고 말했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들은 가족 관객들에게 더 환영받는다. ‘그대사’ 배급사 NEW의 한 관계자는 “영화 관객의 90%가 대체로 20, 30대라는 것과 달리 ‘그대사’는 10대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이 선택한다”며 “시내 중심권보다 주거 밀집지역 극장에서 더 높은 점유율을 보이는 것도 가족단위 관객이 많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사진제공|세인트폴시네마, 필름있수다, 영화사 진진, 영화인.

이해리 기자 (트위터 @madeinharry)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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