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하정규]우리 인생의 뜨거운 사랑앓이 ‘오백일의 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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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8일 1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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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훈남\' 톰(조셉 고든 레빗 분)과 사랑스러우면서도 변덕스러운 썸머(조이 데샤넬)의 캐스팅은 훌륭했다. 할리우드적이지 않은 쿨한 매력을 풍기는 이 커플은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지적인 \'훈남\' 톰(조셉 고든 레빗 분)과 사랑스러우면서도 변덕스러운 썸머(조이 데샤넬)의 캐스팅은 훌륭했다. 할리우드적이지 않은 쿨한 매력을 풍기는 이 커플은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사랑은 운명인가? 혹은 우연인가?

남녀간의 티격태격 사랑싸움 끝에 뻔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예상했던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너무나 예상을 빗나가는 결말에 놀랄 것이다.

더욱이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았을 실연의 아픔을 돌이켜 보게 만드는 한마디로 너무나 '쿨~한' 로맨틱 코미디가 '500일의 썸머'다.

'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는 광고카피가 너무나 마음에 와 닿는, 말 그대로 '남자'라면 한번쯤 사귀어 보았음직한 '그 괘씸한 년'(Bitch!)(그 반대도 마찬가지~)을 함께 만나보자.

▶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순수 청년

건축가를 꿈꿨지만, 현실에서는 기념카드를 만드는 회사에서 축하 문구를 만드는 일을 하는 톰(조셉 고든 레빗 분). 그는 어린 시절 본 영화 '졸업'의 운명적인 사랑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순수한 청년이다.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사장의 비서 썸머(조이 데샤넬).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 눈을 가진 어여쁜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해 애태우던 톰. 그런데 그녀는 의외로 쉽게 손을 내민다.

그녀가 자신이 꿈꾸던 운명의 여인이라고 생각한 그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그녀에게 푹 빠지게 되고, 둘은 모든 연인들이 그렇듯 아름다운 시간들을 만들어나간다. 그러나 그렇게 행복한 시간의 와중에 그녀는 때때로 '우리는 친구사이일 뿐이예요'라든가,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요'라는 의외의 말을 던진다.

톰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의미를 알 수 없어 애태우면서도, 그녀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도심 공원의 벤치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여느 연인들처럼 음악적인 취향의 차이에 대해 다투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온 그녀는 갑자기 차가운 태도로 돌변하면서 그와 거리를 두고, 톰은 자신의 어린 여동생에게 연애상담을 해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한다.

'세상에 널린 게 여자잖아~'라는 동생의 따뜻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우연히 다시 만난 그녀가 초대한 파티에 가게 된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랑을 되찾아 보려고 갔던 톰은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여전히 거리를 두는 그녀에게 소외감을 느끼다가, 그녀의 손에 끼워진 '약혼반지'를 발견하고는 충격 속에서 파티장을 뛰쳐나온다.

결국 실연의 아픔 속에서 오랜 기간 고통스러워하던 그는 카드의 축하 인사말을 만드는 무의미한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원래 꿈인 건축가의 꿈에 도전하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의 추억이 깃들인 벤치에 우울하게 앉아 있는 톰에게 그녀가 다가와 다시 말을 건넨다.
영화 '오백일의 썸머'는 그렇고 그런 로맨틱 코미디물이 아니다. 성 묘사가 유쾌하고 쿨한데다 뜻밖의 결말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영화 '오백일의 썸머'는 그렇고 그런 로맨틱 코미디물이 아니다. 성 묘사가 유쾌하고 쿨한데다 뜻밖의 결말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 평범한 사랑-그 오백일의 변화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사랑이 시작되어 끝나기까지 500일의 시간을 마치 게이지를 돌리듯 임의대로 바꾸어가며 사랑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구성이다.

이는 평범한 진행의 단조로움을 없애주고 관객에게 마치 시간의 퍼즐 맞추기와도 같은 재미와 긴장감을 준다. 이 같은 구성은 또 설레는 첫 만남과 실연의 아픔, 너무나 짜릿하고 행복한 시기와 갈등과 싫증을 느끼는 권태기 등을 대비해가며 인상 깊게 보여준다.

여기서는 장면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대목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항상 가운데 건물이 서있고 왼쪽에는 나무가 서있는 그림인데, 이 그림속의 건물은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건축가를 꿈꾸는 남자 주인공이 마음속에 설계하고 구상한 '운명적인 사랑'의 모습을 상징한다.

퍽이나 평범한 사랑이야기임에도 시선을 끄는 장면들은 많다. 특히 사랑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 묘사 부분이다. 사랑을 시작한 연인에게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냐며 '블로우잡' '핸드잡' 여부를 묻는 짓궂은 친구 장면, '샤워섹스' 비디오를 사서 따라하다 넘어지는 장면, 도심 공원 한복판에서 여자친구를 따라서 '페니스'를 큰 소리로 외치는 대목 등은 너무나 쿨하면서도 유쾌하다.

또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보편화된 가라오케 회식문화가 미국에서도 유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재미있고, 중학생 정도밖에 안되는 여동생에게 톰이 연애자문을 구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이는 연애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경험이 장땡'임을 암시한다. 이 밖에도 아기자기한 사랑신과 어울리는 음악은 튀지 않으면서도 신선함과 유쾌함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랑영화는 아무리 스토리가 훌륭해도 남녀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으면 꽝이다. 이 영화의 캐스팅은 압도적이다. 데빗 데샤넬은 사랑스러우면서도 속마음을 잘 알 수 없는 변덕스러운 여자의 캐릭터를 훌륭히 보여준다. 남자주인공을 맡은 조셉 고든 레빗은 지적이면서도 순수한 훈남의 매력을 물씬 풍긴다. 왠지 '헐리우드'적이지 않은 쿨한 매력을 풍기는 이 커플은 이 영화의 독특한 느낌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렇게 순수하고 지적이면서 훈남인 톰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었을까? 그녀 '썸머'는 이 멋진 남자와 달콤한 사랑을 나누면서도 끊임없이 '이별'을 암시하는 나쁜 여자다.
건축가를 꿈꾸는 청년 톰은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 눈을 가진 여자 썸머에게 푹 빠져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들어간다.
건축가를 꿈꾸는 청년 톰은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 눈을 가진 여자 썸머에게 푹 빠져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들어간다.

▶ 꿈꾸는 사랑과 현실의 사랑은 다르다

남자 주인공이 '건축가'를 꿈꾼다는 설정은 그가 자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사랑을 스스로 구상한데로 만들어가려는 청년임을 상징한다. 그가 자신이 꿈꾸는 건축물들을 열심히 구상하고 스케치하고 때때로 그녀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장면들이 이를 암시한다. 결국 그는 '행복의 건축'이라는 책을 그녀에게 선물하기까지 한다.

즉, 그는 현실 속 인생을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구상한 사춘기 꿈속의 사랑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그녀는 이런 저런 사랑들을 이미 경험하면서 그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꿈꾸고 바라는 대로 된다기보다는 현실에서 살아가면서 만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터득한 것이다. 마치 누구나 바라는 '이상형'이 있겠지만 현실의 사랑은 전혀 뜻하지 않는 모습이 되는 것처럼.

남자 주인공이 그녀가 만났던 여러 전 남자친구들 얘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멋진 남자친구와 왜 헤어졌냐고 물어보았을 때 그녀가 '그냥 그렇게 됐어요'라고 싱겁게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사랑이란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터득하고 있는 '사랑의 고수'였던 것이다.

마침내 불길한 예감처럼 그녀는 홀연히 그를 떠나서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고, 그는 '운명의 사랑'을 잃은 아픔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어느 연인에게나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가 있는 법. 그녀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건축물들을 즐겁게 설명해 주던 그 추억의 벤치에 혼자 우울하게 앉아 있던 톰에게 뜻밖에도 썸머가 다시 나타난다.

그녀는 멋있어진 그를 칭찬하고 건축가일에 도전하는 그를 격려해준 뒤 자기가 결혼한 남자를 만난 얘기를 들려둔다. '사랑이란 운명이 아니라 우연인 것 같아요. 식당에 앉아있는데 우연히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던 거죠. 제가 5분만 늦게 그곳에 갔었더라도 그를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그녀는 아마도 현실에서는 보기 드문(!) 친절한 '썸머'였던 것이다.

염장을 지르는 그녀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는 그 남자. 그는 아직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녀의 얘기처럼 그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결말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현실의 사랑이요 인생이니까.

▶ 실연한 그녀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

결국 이 영화는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사춘기의 환상 속에 멈추어 살아가던 남자가 '썸머'를 만나면서 그 아픈 껍질을 깨고 현실의 사랑과 인생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 영화이다.

우리의 인생도 이런 많은 썸머들을 거쳐서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되고, 따라서 영화의 광고카피처럼 우리는 누구나 썸머를 사귄 적이 있고, 또한 우리 스스로도 누군가의 썸머였을 것이다.

그런 아픔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에서 '여름'이 너무나 소중한 이유는 그 치열한 가슴앓이를 지나지 않고서는 결코 다음 계절로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또다시 나를 찾아와서 하소연하던, 자신을 두 번이나 차고 간 남자친구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그녀에게 이 영화를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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