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이면 그만’…눈살 찌푸리게 하는 ‘가요계 노이즈 마케팅’

  • 입력 2009년 8월 9일 08시 54분


여성듀오 텐. 초록별미디어 보도자료 배포
여성듀오 텐. 초록별미디어 보도자료 배포
음반업계에 불황이 계속되면서 최근 가요계에는 음반이나 가창력으로 경쟁하는 정상적인 마케팅보다 화제를 불러 떠보려는 변칙적인 마케팅에 목숨을 거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휴식기를 보낸 가수가 새 앨범을 들고 나오거나 신인가수가 데뷔할 때면 어김없이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 의혹이 인다.

최근 한 홍보대행사는 "데뷔를 앞둔 '9등신 몸짱' 듀오 TEN(하나, 송이)의 싱글 앨범 재킷 사진이 인터넷에 노출됐는데, 이 사진 속 두 사람의 자세가 야릇해서 동성애 논란에 휩싸였다"는 소속사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했다. 논란에 대한 해명 자료 같지만, 정작 소속사 입장은 "노코멘트"였다.

섹시 여가수와 동성애라는 자극적인 미끼는 잘 먹혀들었다. 인터넷 매체들은 보도 자료를 인용해 경쟁적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사실 보도 자료가 뿌려지기 전만 해도 두 사람의 동성애 의혹을 지적하는 게시물은 찾기 어려웠다. 멤버 하나의 미니홈피, 팬 카페도 조용했다. 하나는 이미 레이싱 모델 겸 연기자로 꽤 알려진 홍하나다.

소속사에서 언론에 공개한 사진에서도 동성애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뉴스 댓글에도 "자, 이제 진짜 동성애 사진을 보여 주시오", "또 노이즈 마케팅?" 등 반응이 다수였다. 그렇지만, 이날 하루 TEN은 인기검색어 수위에 올라오는 등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물론 소속사는 노이즈 마케팅 의혹에 대해 억울하다고 했다. 소속사 관계자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얘기가 나와 하나와 송이가 무척 속상해하고 있다"며 "두 사람은 레즈비언이 아니지만, 성격이 사내아이 같다. 서로 짓궂게 장난치고 노는 모습이 아는 사람 블로그를 통해 나간 것이고, 이왕 사진이 공개된 김에 언론에 배포한 것"이라고 말했다.

워낙 음반 시장이 축소된 까닭에 어지간해서는 가수들이 자기 곡 한번 제대로 알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노이즈 마케팅은 강력한 유혹이 된다. 별도로 돈을 들이지 않고도 단기간에 홍보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뮤직비디오가 선정성 탓에 지상파 방송 불가 처분이라도 받게 되면 기다렸다는 듯 보도자료로 만들어 각 언론사에 홍보용으로 배포하는 일도 잦아졌다.

가수 채연은 '선정성 때문에 지상파 3사로부터 모두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내용의 자료를 배포했다. 혜령의 '나 왜 헤어져'도 방송 불가 판정을 받고 유명세를 탔다. 브라운아이드 걸즈는 뮤직비디오 선정성 논란 속에서 음원 사이트 1위를 하기도 했다. 올해 5월 1집 앨범을 발표한 신인가수 어게인은 아예 타이틀곡 '603'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지상파 방송 심의를 포기했다. 어차피 지상파를 타지 못해도 케이블이나 인터넷에 공개하면 된다.

진위 여부를 떠나 음원 유출 사고가 일어나면 각 매체 기자에게 전송하는 것도 비슷하다. 이효리와 서인영은 지난해 컴백을 앞두고 일부 곡이 인터넷에 유출됐다는 사실을 알려 노이즈 마케팅 의혹을 받았다. MBC 라디오에서 음반 발매 전에 신곡을 방송하는 바람에 음원이 유출된 여성그룹 티아라도 사고 수습보다는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TEN의 사례에서 본 동성애 코드도 처음은 아니다. 2년 전 여성 듀오 폭시도 뮤직비디오에서 서로 키스해 화제가 됐다. 다만 깜짝 이슈에 그쳐 음반 판매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외국에서는 러시아 여성 2인조 타투가 뮤직비디오에서 교복을 입은 채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연기해 논란이 됐다. 팝스타 마돈나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키스 퍼포먼스도 유명하다.

이같은 노이즈 마케팅은 비단 가요계에서만 성행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 허경영 씨의 잦은 기행도 노이즈 마케팅으로 볼 수 있고, '벗는 뉴스'로 화제를 모았던 '네이키드 뉴스'는 경영진이 아나운서 옷만 벗기고 '먹튀'해 사회 문제가 됐다.

하지만 마케팅 전문가들은 노이즈 마케팅은 일시적인 흥밋거리를 제공할 뿐, 대중의 본질적인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야말로 '노이즈(소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동훈 연세대 교수는 "이는 소비자의 관심을 자극하는 상술일 뿐, 마케팅이라고 할 수 없다"며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진실되고 충분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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