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형사, 신출귀몰 범인 어떻게 잡을까

  • 입력 2009년 6월 2일 02시 59분


11일 개봉 김윤석의 새 영화 ‘거북이 달린다’

얻어맞고 당하고 다치고… 김윤석 땀내연기 물씬

‘촌스러움의 미학’ 눈길

‘추격자’의 김윤석이 주연을 맡은 영화 ‘거북이 달린다’(11일 개봉)는 프랑스 칸 영화제에 초청받아 다녀온 ‘박쥐’나 ‘마더’ 같은 문제작은 아니다. 하지만 텍스트나 상징으로 가득한 골치 아픈 영화들을 껄끄럽게 여기는 관객이라면 마음 편하게 즐기기에 좋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게으르게 소일하며 살아가던 시골 형사 조필성(김윤석) 앞에 느닷없이 지명수배 탈주범 송기태(정경호)가 나타난다. 소싸움 노름판에서 운 좋게 따낸 돈을 송기태에게 몽땅 빼앗긴 조필성은 모처럼 본업에 충실한 형사로 돌아간다.

제목은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에서 가져왔다. 송기태가 토끼라면 조필성은 거북이. 영화 중반 송기태에게 멋모르고 덤볐다가 잔뜩 두들겨 맞고 손가락까지 잘린 조필성에게 서울에서 온 특수수사대 형사가 핀잔을 던진다. “상대를 봐 가면서 덤벼야지, 감히 어딜….”

송기태는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는 신출귀몰한 행각으로 인터넷 팬클럽까지 거느린 ‘스타 탈주범’이다. 친분이 있는 안마시술소 포주의 뒷돈을 받고 신흥 출장안마 포주를 검거해주는 조필성은 송기태의 적수로 아무래도 한참 부족하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의 결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거북이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다는 줄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어떻게 이기게 만들 것인가. 조필성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건 채 물고 늘어지는 무식한 작전으로 송기태를 잡아낸다. 치밀한 구성의 형사극과는 거리가 한참 먼 마구잡이 추격전. 이 영화의 재미는 ‘범인을 잡는 방법’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풍겨나는 ‘사람 냄새’에 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첫 대결 장면에서 이연우 감독이 방점을 둔 것은 액션 연출이 아니다. 무참하게 얻어맞고 기절해 엎어진 조필성을 동네 강아지가 혀로 핥아 깨우는 바로 다음 장면에서 이야기의 지향점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 감독은 “일부러 연기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똥개를 캐스팅했는데, 현장에서 자기 혼자 알아서 놀면서 우연히 좋은 장면을 만들어 주더라”라고 말했다.

1월 김윤석과의 인터뷰에서 전작 ‘추격자’에 이어 또 형사 역을 맡은 것을 두고 “안이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고, 전작 ‘2424’로 흥행에 실패했던 이 감독의 작품을 선택한 것도 의아하다”고 물어 봤다. 기자의 긴 질문이 무안하게 김 씨의 답변은 간단했다. “시나리오가 따뜻해서요.”

‘거북이…’는 세련된 스타일이나 심각한 주제의식을 내세운 영화가 아니다. 싸구려 같다는 말도 나온다. 주목해서 볼 만큼 미장센이 탄탄한 명장면은 눈 씻고 봐도 없다. 기사에 인용할 만한 멋진 대사도 한 줄 없다. 김윤석의 연기는 안정적이지만 ‘타짜’나 ‘추격자’에서 보여줬던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사라졌다. 정경호의 탈주범 연기도 ‘추격자’의 하정우와 비교하면 느낌이 약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고갱이는 탈주범과 형사의 추격전이 아니다. 나태하지만 선량한 소시민 형사 조필성이 뜻밖의 싸움을 계기로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는 이야기. 소박한 라스트 신은 ‘촌스럽다’는 표현이 때로는 비난이 아니라 칭찬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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