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 대한 갑론을박

  • 입력 2009년 4월 28일 02시 55분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화가인 후안을 사랑하는 크리스티나(왼쪽)는 화가의 전처인 마리아와도 사랑에 빠진다.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화가인 후안을 사랑하는 크리스티나(왼쪽)는 화가의 전처인 마리아와도 사랑에 빠진다.
따스한 씨 “74세 노감독, 사랑의 본질 꿰뚫어”

냉철한 씨 “수컷 암컷 만나면 사고친다는 얘기”

지난 칼럼에 이어 이번에도 사물을 바라보는 인간적 시선을 가진 ‘따스한’ 씨와 매사를 ‘싸가지’ 없을 만큼 차갑게 바라보는 ‘냉철한’ 씨가 논쟁을 벌였다. 이번엔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두고 갑론을박이다.

친구관계인 두 여성 비키(레베카 홀)와 크리스티나(스칼릿 조핸슨)가 주인공. 둘은 스페인으로 놀러갔다가 야성적인 화가 후안(하비에르 바르뎀)을 만난다. “셋이서 섬으로 놀러가 내키면 함께 사랑을 나누자”는 파격 제안을 던지는 후안. 결혼을 앞둔 정숙한 여성 비키는 분개하지만 크리스티나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하지만 웬걸? 크리스티나가 배탈로 쓰러진 사이에 비키는 후안과 먼저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니…. 이윽고 원기를 회복한 크리스티나는 후안과 그의 전처 엘레나(페넬로페 크루스)와 함께 이성애, 동성애가 뒤섞인 삼각 애정에 빠져든다.

따스한 씨=아, 역시 거장답네요. 74세의 나이에도 우디 앨런 감독은 사랑의 본질에 관해 장난스러우면서도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요. 결혼이란 제도도 신나게 비꼬고요.

냉철한 씨=그럼요. 자기 애인(여배우 미아 패로)의 입양아(한국계 순이 프레빈)와 바람이 나 결혼까지 한 감독이니 오죽하겠어요? 그런 삶을 옹호하고 싶었겠죠. 이 영화는, 몇 년 전 제가 무지하게 집중해서 보았던 북한산 다큐멘터리영화를 떠오르게 해요.

따스한 씨=무슨 다큐멘터리인데요?

냉철한 씨=‘동물의 쌍붙기’란 영화였죠. 이 영화는 성행위 횟수의 챔피언인 토끼와 굵은 ‘쟁기(생식기)’를 자랑하는 코끼리를 비롯해 자라, 돼지, 말, 스컹크, 캥거루, 고슴도치, 얼룩말, 흰 오리, 미꾸라지 등 각종 동물의 번식 장면으로 가득한데요. 메시지가 분명해요. 바로 수컷과 암컷이 만나면 십중팔구 사고 친다는 것이죠. 인간도 똑같아요.

따스한 씨=우디 앨런의 영화보다 한국영화 ‘아내가 결혼했다’가 더 도발적이었다고 봐요. ‘아내가…’는 결혼 상태에서 또 다른 결혼을 꿈꾸는 한 여성(손예진)을 통해 결혼이라고 하는 제도의 불완전성과 더불어 서로를 독점하지 않는 ‘다자간 연애’, 즉 폴리아모리(polyamory)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요.

냉철한 씨=결혼이라는 제도요? 폴리아모리요? 아유, 당신처럼 명문대 나온 사람들은 문제예요, 문제. 그 영화들의 메시지는 간단해요. 바로 ‘섹스는 영원하다’는 것이죠. 약혼자와의 결혼을 앞뒀든 말든, 상대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인간의 섹스 욕망은 인류 멸망의 그날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정교빈(변우민)이야말로 우디 앨런 감독 이상으로 멋진 남자라고 봐요.

따스한 씨=또 무슨 대낮에 촛불 켜고 옆차기 하는 얘기죠?

냉철한 씨=정교빈을 보세요. 이 여자가 좋으니 결혼하고, 저 여자가 좋으니 또 결혼하고. 그래도 정교빈은 사랑과 결혼을 동일시하는 남자이니, 이 얼마나 보수적인 태도인가요.

따스한 씨=아, 또 무슨 궤변을…. 사랑은 단지 육체의 게임이 아니에요. 사랑은, 뭐랄까…, 책임이에요. 얼마 전 눈물 줄줄 흘리며 보았던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당신 같은 사람은 꼭 보고 마음을 정화시켜야 해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남자(권상우)는 진정 사랑하는 여인(이보영)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죽기 전 그녀를 건강하고 성실한 치과의사(이범수)에게 시집보내잖아요? 난 영원한 사랑을 믿어요. 이 영화엔 사랑의 본질을 담고 있는 너무도 아름다운 대사가 나와요. 권상우의 이런 대사죠. ‘사랑은 칫솔꽂이 같은 거야. 칫솔꽂이는 하난데, 칫솔은 여러 개잖아? 사랑은 이런 거야. 칫솔꽂이의 칫솔들처럼 늘 같이 있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거….’

냉철한 씨=아, 그 대목. 나는 특히나 감정이입이 안 됐어요. 권상우가 하도 “치설 점 절래(칫솔 좀 줄래)?” 해서요…. 사랑은 같은 칫솔꽂이에 나란히 꽂힌 칫솔들 같은 거라고요? 하긴 정말 그러네요.

따스한 씨=오, 드디어 당신이 정신을 차리는군요.

냉철한 씨=정말, 사랑은 칫솔이에요. 오래된 칫솔은 바로 버려지고 늘 새로운 칫솔로 교체되잖아요? 돈만 있으면 칫솔은 이마트에서 몇백 개라도 새로 살 수 있잖아요? 정말 기가 막힌 비유네요.

따스한 씨=당신은 악마예요, 악마.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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