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디트]‘나의 마음은…’ 음악 담당 재일동포 박보 씨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위안부 할머니 돕는 ‘긴머리 아저씨’

소송비 마련위해 통기타치며 노래

《영화가 끝난 뒤, 스크린에 수많은 이의 이름이 올라갑니다. 한 편의 영화가 나오기까지 스크린 뒤에서 혼신을 다한 이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입니다. ‘엔딩 크레디트’에 나오는 이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에 스포트라이트를 격주로 비춥니다.》

일본군 위안부 출신 송신도 할머니(87)가 10년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법적 투쟁을 그린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감독 안해룡). 이 작품의 엔딩 크레디트는 유난히 길었다.

영화가 끝나자 출연자 제작진을 포함해 720여 명의 이름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스피커에선 하모니카와 통기타 선율에 실린 절규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송신도 할머니를 만난 것은 구단시타의 불고기 집이었다∼/등에는 칼 흉터 팔에는 가네코라고 적힌 문신/자네 딸들이 나와 같은 아픔을 겪지 말아야 한다고/할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재일동포 록 가수 박보 씨(55)의 목소리다. 전화를 걸자 현재 일본 교토에 있다고 밝힌 그는 10년 전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할머니는 첫 만남에서 가수 전인권처럼 긴 곱슬머리인 그에게 ‘긴 머리 아저씨’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박 씨는 할머니를 ‘록 뮤지션’이라고 불렀다. 거침없는 화법에 늘 씩씩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박 씨는 할머니의 소송을 도운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과 함께 소송비용을 모금하는 자선 공연에 참여했다. 그는 애창곡인 송창식의 ‘왜 불러’와 ‘한 오백년’ ‘밀양아리랑’ 등의 민요를 무대 위에서 불렀다. 그렇게 모은 6000여만 원의 성금으로 영화는 2007년 도쿄에서 처음 상영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간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 씨의 이름은 히로세 유고. 하지만 1980년부터 한국 이름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성은 밀양 박씨. 물론 그에게도 일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일본인에게는 이방인으로, 한국인에겐 외국인으로 대접받던 시절의 얘기다. 하지만 지금은 몸에 섞인 피의 비율처럼 자신의 절반은 한국 사람이라고 믿는다.

일본 총리의 사죄문 발표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던 재판은 2003년 도쿄 최고법원에서 결국 기각됐다. 하지만 “재판에서 졌어도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할머니의 말처럼 그의 노래도 멈추지 않았다. 요즘도 경찰의 눈을 피해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위안부 위령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그는 시위에 얽힌 재밌는 일화도 들려줬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세 개의 문이 있어요. 두 군데 문에는 감시카메라가 있어 매번 붙잡히지만 한 군데는 카메라도 못 잡는 사각지대예요. 그곳을 찾아 퍼포먼스에 성공한 적도 있습니다.(웃음) 역사적인 자리에서 이런 공연을 벌이는 것도, 할머니를 도우려는 것도 제게는 일종의 카르마(운명) 아닐까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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