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화해… 가족애를 말하다

  • 입력 2009년 2월 24일 02시 57분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결혼식 사진. ‘레이첼, 결혼하다’는 결혼식 이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그리며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사진 제공 소니픽처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결혼식 사진. ‘레이첼, 결혼하다’는 결혼식 이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그리며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사진 제공 소니픽처스
26일 개봉 ‘레이첼, 결혼하다’

‘딴딴딴 딴….’

스크린이 열리면서 차분한 피아노 변주로 배경에 깔리는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 26일 개봉하는 ‘레이첼, 결혼하다’는 이 경쾌한 멜로디에 얹어진 삶의 무게를 고찰하는 영화다. 1990년대 초 ‘양들의 침묵’ ‘필라델피아’의 성공 이후 침체에 빠졌던 조너선 드미 감독이 결혼식을 앞두고 모인 가족의 갈등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냈다.

언니 레이첼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재활원에서 잠시 외박을 나온 마약중독자 킴(앤 해서웨이). 흥겨운 축하음악이 흐르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9개월 만에 재회한 가족과의 포옹에서 은근한 경계심을 느낀다. 사고뭉치 동생이 인생 최고의 날을 망칠까봐 전전긍긍하는 언니. 이혼한 뒤 오랜만에 재회해 서로 한마디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부모. 사람들은 결혼 축하를 위해 모였지만 저마다의 사연 때문에 크고 작은 균열을 빚는다.

결혼이 당사자만의 일이 아님을 확인하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가족의 의미에 대한 민감한 질문으로 조금씩 시선을 옮긴다. 드미 감독이 관찰한 가족이란 ‘때로 누구보다 아픈 상처를 주지만, 힘겨울 때면 말없이 돌아가 서로 안아주게 되는 관계’다.

레이첼은 마뜩잖은 마음으로 들러리를 맡겼던 동생 킴이 결국 사고를 치자 “가끔은 네가 없어졌으면 해!”라고 쏘아붙인다. 하지만 행방불명됐다가 돌아온 킴을 끌어안으면서 가족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고맙다”뿐이다.

형제자매가 누리는 ‘불공평한 행복’을 질투해본 사람, 명절 가족모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소외감을 느껴본 사람, 자신의 불행을 가족 탓으로 돌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감회가 색다를 장면. 드미 감독은 가족의 존재를 당연한 듯 여기며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 꼬집는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핸드 헬드 카메라 프레임 속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해서웨이다. ‘프린세스 다이어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세련되고 발랄한 이미지를 선보였던 그는 피에로를 연상시키는 짙은 마스카라 속에 미모를 감추고 괄목상대할 연기를 보여줬다.

1980년대 초 ‘사관과 신사’ ‘애정의 조건’에서 사랑스러운 모습을 뽐냈던 데브라 윙거(54)의 생기 있게 나이든 모습도 덤으로 눈여겨볼 만하다. 15세 이상.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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