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美 여배우 전성시대 vs 韓 여배우 가뭄시대

  • 입력 2003년 3월 27일 18시 08분


코멘트
《‘여배우 전성시대 Vs. 여배우 만성부족’ 여배우를 중심에 놓고 할리우드와 한국을 비교하자면 이렇다. 그야말로 ‘여배우들의 영화’라 할 ‘시카고’가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듯 할리우드에서는 여배우 전성시대가 만개한 반면, 한국에서는 몇 년째 계속되어온 여배우 기근현상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할리우드에서는

‘시카고’에서 ‘투 톱’인 르네 젤위거, 캐서린 제타 존스의 카리스마는 탭댄스를 추며 열연한 리차드 기어를 무색케 한다. 니콜 키드먼에게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디 아워스’도 그를 비롯해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 등 세 여배우의 연기 향연장이었으며,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성공 신화를 일궈낸 주인공도 여배우 니아 바르달로스다.

또 주목할만한 변화는 나이든 여배우의 비중이 높아져간다는 것. 미국 배우조합 (SAG)에 따르면 2001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의 배역 가운데 여배우의 역할은 38%, 40세 이상의 여배우의 역할은 24%였다. 이는 미국 인구 중 40세 이상 여성의 비율(22.6%)보다 높다.

미국 연예전문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최근 발표한 ‘올해 주목할만한 여배우 10명’에 꼽힌 이들도 르네 젤위거(33), 니콜 키드먼(35), 줄리아 로버츠(35), 줄리언 무어(42)등 30∼40대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는…

‘여배우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2월 본보 문화부가 실시한 ‘프로가 뽑은 우리분야 최고’의 영화 분야 설문조사에서, ‘최고의 여배우, 연기력이 뛰어난 여배우 3명씩을 뽑아달라’는 항목에 “그럴만한 여배우가 없다”고 응답한 영화계 인사들도 상당수였다.

한국영화가 곧 멜로를 연상시키던 시절에는 ‘여배우 트로이카’들이 대를 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그 명맥도 끊긴 상태다. 여배우중 가장 각광받던 심은하는 은퇴했고 이영애는 ‘봄날은 간다’이후 2년째 쉬고 있으며 이미연도 ‘중독’이후 “잠시 쉬겠다”고 선언했다. 고소영은 ‘이중간첩’으로 오랜만에 복귀했으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TV 드라마로 갔다가 영화로 돌아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 출연중인 전도연이 거의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김정은 전지현 공효진 장진영 등이 부상하고 있지만 출연작이 많지 않아 간판 배우로 자리잡을지는 미지수.

▼왜 그럴까?

김소영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이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했다. ‘시카고’의 캐서린 제타 존스는 영국, ‘디 아워스’의 니콜 키드먼은 호주 출신 배우다. ‘디 아워스’의 줄리안 무어와 메릴 스트립은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에서 오래 단련되어온 배우들이다. 현재 여배우들의 활약상은 이처럼 외부의 ‘타자’를 받아들여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아온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특징을 반영한다는 것. 이와 함께 ‘어바웃 슈미트’의 주연 잭 니컬슨처럼 중년의 남성 배우들이 대변하는 미국의 남성상은 불안과 절망, 쇠퇴의 징후를 보이는 반면 활력과 에너지는 여성 캐릭터 쪽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영화에서는 한국계 스위스군 여장교(‘공동경비구역 JSA’), 중국 여자(‘파이란’), 북한 여자(‘쉬리’)처럼 남한 여성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고 여성은 늘 ‘타자’로 묘사되어 왔다. 김교수는 “외환 위기이후 블록버스터로 세계화에 대응했던 한국 영화의 방식은 ‘쉬리’처럼 남성 영웅을 통해 위축된 한국을 극복해보려는 상상력이었고 그런 제작 경향이 여배우들의 입지를 더욱 좁혀 놓았다”고 분석했다.

한국영화 장르의 편향도 또 하나의 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한국영화와 대중의 취향이 할리우드화하면서 멜로 영화가 하위 장르로 밀려나고 코미디와 액션 영화가 우위를 차지하는 변화도 여배우 위상 추락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장르의 편향과 함께 여배우들의 직업의식이나 자질의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나이든 여성에 대한 혐오가 있는 한국 문화의 특성도 ‘여배우 기근’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아줌마’라는 말이 상징하듯 나이든 여성이 주도적이 되어가고 여성 내부의 남성성이 강화되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한국 문화에서 여성적 캐릭터가 당대의 아이콘이 되는 영화는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