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좌담/2002년기상도]"시네마 한국, 잔치는 계속된다"

  • 입력 2001년 12월 31일 16시 28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는 새해에도 계속될 것인가. 한국 영화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시장 점유율 49.6%(12월16일 기준)까지 치솟으며 한국 문화산업의 꽃으로 여물고 있다. 한국 영화가 산업화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나아갈 길을 영화인들의 좌담을 통해 점검했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 ‘친구’ ‘조폭마누라’ 등을 배급한 ‘코리아픽처스’의 김동주 대표,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정책연구실장이 참가했다.》

▽김동주(이하 동)〓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50%에 육박하다니, 꿈같던 일이 현실이 됐다. 지난해는 한국 영화 산업화의 원년이다.

▽차승재(이하 차)〓새로운 관객층이 유입됐다. 극장에 가보면 40대 뿐만 아니라 50대 관객도 늘었고 부부 동반도 많다. 최근 서울 강남 ‘메가 박스’를 가보니까 60대 할머니가 예매를 하더라. 분당에서는 한 가족이 멀티플렉스에서 각각 다른 영화를 보고 다시 만나 외식을 하기도 하더라.

▽김혜준(이하 김)〓그러나 조폭 영화가 봇물처럼 터지면서 영화의 다양성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차〓난 좀 생각이 다르다. 조폭 영화가 없었다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고양이를 부탁해’ 등이 잘됐을까? 반드시 그렇진 않다. 요즘 관객의 상당수는 (영화를 보는) 훈련이 안됐다. 가령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좋은 영화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새로 형성된 관객은 의미를 반추하는 영화를 찾지 않는다. 웃음이든 울음이든 7000원의 상응가치가 있는, 뭔가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영화를 원한다. 이런 관객에게 우디 앨런의 영화를 들이대며 웃으라고 하면 웃겠나. 영화도, 영화를 보는 관객의 눈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다.

▽김〓그래도 올해 나올 조폭이나 코미디 영화가 지난해와 동어반복적이라면 관객들이 식상해 할 것이다.

▽차〓올해도 조폭 영화가 많이 나올 수 있다. 나도 한 편 만든다. 하지만 같은 조폭 영화를 만들더라도 질을 높여가는 게 중요하다. ‘대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같은 영화처럼.

▽동〓사실 지난해에는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영화가 나왔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조폭영화였을 뿐이다. 올해 영화계도 ‘뷔페’를 준비하겠지만 과연 음식이 다 맛있을 것이냐, 손님이 다양한 음식을 먹으려 할 것이냐, 그게 문제다.

▽차〓엄밀히 말하면 관객을 끄는 건 조폭 영화가 아니라 코미디물이다. 올해도 코미디 영화는 계속 인기를 끌 것이다.

▽김〓사는게 힘들다보니 코미디에 쏠리는 것 같다. 영화라도 스트레스를 풀게 해줘야지.

▽차〓지난해 관객 20만명대의 영화들이 사라졌다. 100만, 200만명 아니면 아예 3만, 5만이다. 지난해는 이런 양극화 현상이 심했다. 잘 되면 대박이고 안되면 쪽박인 것이다.

▽동〓100개이상 스크린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와이드 릴리스’는 지난해 본격화됐다. 올해도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김〓이제는 스크린을 누가 많이 확보하느냐가 흥행에 영향을 미친다.

▽동〓저예산 영화도 나름의 생존 방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까지 충무로엔 저예산 영화만의 제작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와이키키…’같은 영화도 17억원쯤 들었다. ‘친구’ 제작비도 ‘와이키키…’와 같은 17억원이었다.

▽차〓‘와이드 릴리스’의 배급 방식을 저예산 영화가 택한 점도 문제다.

▽동〓스크린의 증가가 ‘작은 영화’의 유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나 ‘작은 영화’의 장기간 상영을 보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차〓멀티플렉스가 많아지면서 시장의 반응에 영화가 연동되고 있다. 전에는 입소문을 통해 뒤늦게 연동됐는데 이제는 동시적이다. 이것이 폐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시장을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동〓‘서편제’처럼 입소문으로 이어져 대박이 터지는 시절은 지났다.

▽김〓점점 더 시장논리가 들어오는 것이다.

▽동〓영화 관람횟수가 현재 연 1.7회에서 3, 4회로 늘어나고 관객 폭이 넓어지면 한국 영화가 현재 50여편에서 60∼70편으로 늘어날 것 같다. 이처럼 다양한 영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작은 영화들은 단관 개봉이라도 점유율이 높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

▽차〓예술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시네큐브는 점유율이 상당하다. 점유율만 보면 강남이나 대학로, 신촌에도 시네큐브같은 극장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렇게만 되면 예술 영화도 안정적으로 상영할 수 있다.

▽동〓올해 한국 영화 점유율 전망은? 전체 관객수는 확실히 늘어날 것 같은데.

▽차〓지난해 한국 영화 점유율은 예상을 뛰어 넘은 흥행 대작들이 끌어올렸다. 지난해 영화관을 찾은 인구가 8000만명 가까이 된다. 820만명을 동원한 ‘친구’가 점유율 10%를 채웠다. 그러나 올해는 이만한 히트작이 나올지.

▽김〓올해도 한국 영화 점유율이 40∼50% 사이에서 머무를 것으로 본다.

▽차〓올해는 정말 예측하기 어렵다. 40%도 안될 수 있다.

▽김〓나처럼 영화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은 잘 될 것 같다고 보는데, 제작자들이 더 자신 없는 것 같다.(웃음)

▽동〓지난해 시장 점유율로 보면 4000만명이 한국 영화를 봤다. 올해는 극장과 스크린의 증가로 관객이 늘어 나겠지만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지난해처럼 좋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김〓난 가능하다고 본다. 한번 커진 시장은 줄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가 내세우는 것은 ‘놀래킴’의 전략이다. 저건 우리가 할 수 없는데, 같은.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게 없어졌다. 게다가 전지현 장동건같은 배우의 친숙함이 한국 영화의 최대 강점이다. 톰 크루즈같은 할리우드 스타도 친숙함의 면에서 한국 스타들을 따라 잡을 수 없다.

▽동〓그건 맞다. ‘한류’도 우리 것이 넘쳐 중국이나 동남아로 간 것이다.

▽김〓요즘 한국 영화 점유율이 오르면서 스크린쿼터 폐지론이 대두되고 있는데 스크린쿼터는 무조건 유지돼야 한다. TV 비디오 DVD 등 영화를 볼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졌다는 점을 스크린쿼터 폐지 이유로 들지만 틀린 말이다.

▽동〓올해는 제작비도 많이 오를 것 같다. 이미 인건비도 상당히 올랐다.

▽김〓재작년의 평균 제작비가 약 21억5000만원이었는데 작년엔 평균 27억원대였다.

▽동〓나도 ‘친구’를 17억원에 만들었는데 제작 시점이 지난해 하반기였다면 25억원은 들었을 것 같다.

▽김〓올해도 영화에는 계속 돈이 몰릴 것 같다. 지난해 영화쪽에서 1년간 회전된 자금을 약 4000억원 정도로 본다. 올해는 이보다 약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융권과 코스닥을 통해 돈이 유입될 테고. 웬만한 규모의 영화는 무리없이 만들 수 있을 것 이다.

▽차〓한국 영화 잔칫상은 이미 벌어졌다. 하지만 다 뽑아먹겠다는 게 문제다. 개런티, 인건비 상승도 그런거다. 잔칫상에서 누가 많이 먹을지, 누구에게 얼마나 나눠줄지 분배의 문제가 올해 중요한 과제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봐야한다는 거다. 하지만 영화를 ‘한탕주의 장사’ ‘보따리 장사’로 여기던 옛 습성 때문에 단기적으로 투자하는 게 여전히 문제다.

▽김〓올해 한국 영화의 과제는 두가지다. 투자자의 수익률을 높여주는 것과 영화의 다양성 확보다. 예술 영화들도 제작비를 낮추고 독자적인 배급망을 구성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리〓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이승헌기자ddr@donga.com

◈좌담 참석자(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

▶김동주(36)
△영화 배급사 ‘코리아픽처스’ 대표
△99년 ‘코리아픽처스’ 설립
△‘춘향뎐’ ‘친구’ ‘조폭마누라’ 등 배급

▶차승재(42)
△싸이더스 대표
△91년 ‘걸어서 하늘까지’의 제작부장으로 영화계 입문
△95년 ‘우노필름’ 설립. 영화 ‘비트’ ‘8월의 크리스마스’ ‘무사’ 등 제작

▶김혜준(41)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장
△인권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연구소 부소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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