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천재화가 일대기 '폴락' 광기-방황-요절

  • 입력 2001년 11월 8일 18시 28분


추상표현주의로 2차대전 후 미국 화단을 이끌었던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폴락’(영어 발음은 폴록·이하 폴록으로 표기)은 지독하게 ‘인간 폴록’을 파헤친다. 자동차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해 ‘화단의 제임스 딘’으로도 추앙받는 그이지만, 영화는 폴록의 어두운 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무명 화가로 전전하고 있는 폴록에게 여류 화가 리 크레이즈너가 다가온다. 그는 폴록의 작업실을 둘러본 후 그의 천재적인 색채 감각에 혼을 뺏기고 평생 ‘후견인’이 되기로 한다. 하지만 술에 취해 며칠씩 길거리를 헤매는 폴록의 기행이 한 여자를 만났다고 쉽게 고쳐질 리 없다. 결국 둘은 뉴욕을 떠나 인근 롱아일랜드 인근에 정착하고, 그 곳에서 폴록은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해간다.

영화 속 폴록은 ‘라이프’ 잡지에 대서특필될만큼 사회적 비중은 높아가나 사생활은 그렇지 않다. 캔버스에 붓을 대지 않고 물감을 흘리는(드리핑·dripping) 작품으로 당시 추상화 스타일을 통째로 바꿔놓을 때, 그는 아이를 갖는 문제를 놓고 아내와 이전투구를 벌인다.

영화에서 관객이 폴록을 보는 시선은 아내가 폴록을 대하는 그것이다. 크레이즈너가 남편을 바가지 긁을 때 동시에 관객은 폴록에게 삿대질을 하게 된다. 전기(傳記) 영화라는 점이 무색할만큼 폴록을 ‘낮은 곳’으로 떨어뜨리지만, 블루 칼라 내음 물씬한 화가로 유명했던 폴록은 이럴 때 더 빛나 보인다.

하지만 허술한 대목도 있다. 그가 천재적인 화가라는 점이 영화 속 주변 인물들의 설명으로 너무 간단하게 처리됐고 뉴욕에서 롱 아일랜드로 이사한 후 영감을 얻게 된 계기도 석연찮다.

‘더 록’ 등에서 호연했던 에드 해리스는 주연과 감독을 동시에 맡아 몽환적인 표정으로 폴록을 연기했다. 80년대 중반 아버지로부터 “넌 폴록과 너무 닮았다”(특히 대머리 부분)는 말을 듣고 영화를 구상한 해리스는 10년간 폴록의 작업 스타일을 연습할만큼 이 영화에 매달렸다. 아내 크레이즈너 역의 마샤 게이 하든은 이 영화로 2000년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15세 이상 관람가. 10일 개봉.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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