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TV읽기]시청자 의견 ‘쌍방향 대화’ 아쉽다

  • 입력 2001년 8월 8일 18시 23분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13690, ‘개그콘서트’ 12506, ‘시사난타 세상보기’ 10364, ‘일요일 일요일 밤에’ 9952…. 무슨 암호가 아니다. 8일 현재 방송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떠있는 프로그램별 시청자 의견 건수다.

쌍방향 매체인 인터넷이 생긴 이후 시청자와 TV가 성큼 가까워진 느낌이다.

KBS가 8월 들어 가요 프로그램에서 순위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해 한 가요담당 PD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항의라고 해봐야 전화 몇 통 받는 정도여서 가볍게 넘겼지만, 팬클럽들이 거대화되고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엔 별별 곳에 다 진정서와 항의문을 보내고 광고 거부 운동까지 벌인다고 나서는 바람에 피곤해졌다.”

▼익명의견 격식 없지만 꽤 솔직▼

인기 개그맨 신동엽은 얼마전 자기 집을 급습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의 인기코너 ‘러브하우스’ 제작진에게 장난기 섞인 말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LCD 모니터를 가리키며) 집에서 VOD로 미쳐 못 본 방영 분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청자 의견란에도 들어가 시청자가 뭔가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그런 게 아니라고 다시 의견을 올려놓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달 ‘러브하우스’는 좀 색다른 기획을 마련했다.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덜어주기 위해’ 그동안 새로 집을 고쳐 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잘 살고 있는지, 말하자면 ‘후속편’을 내보낸 것이다.

의심 많은 시청자들이 “가정형편이 어려운데 인테리어를 바꾼다고 행복이 보장되나” “저 집, 줬다가 도로 뺐는 건 아닐까” 등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어딘가에서 입수한 것이 분명하다. 바로 지난주(5일) ‘러브하우스’는 전국 순회를 시작했는데, 그 날 주인공이 된 소년가장도 인터넷으로 자신의 사연을 보냈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인 ‘TV속의 TV’(MBC) ‘TV는 내 친구’(KBS) ‘열린 TV 시청자 세상’(SBS)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시청자 의견을 전할 땐 네티즌들의 의견을 빠뜨리지 않는다. 가령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앞으로 의견을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좋다는 의견과 나쁘다는 의견이 7대 3 정도로 좋다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익명으로 접수되는 시청자 의견들은 예의나 격식을 차리지 않는 대신 꽤 솔직하다. 어느 진행자가 표정이 건방져 보인다는 둥, 대체 시청자를 뭘로 알고 이런 프로그램을 내보내느냐는 둥, 누구 좀 출연 시켜 달라는 둥, 격려와 비난, 감사와 질책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 의견들을 살펴보면 대중의 성향은 정말 무지개처럼 다양하고, 시청자들의 참여욕구가 의외로 높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라파엘리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커피 자판기와 다르다고 역설했다. 동전을 넣으면 커피가 나오는 것은 분명 쌍방향이지만, 그것이 일회적이고, 지적인 사고가 결여된 기계적인 반응이기에 진정한 쌍방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TV발전 진정한 밑거름 역할해야▼

시청자 의견 중에는 별 생각 없이 자판기에 동전 넣듯 보내는 의견도 섞여 있다. 그렇다고 시청자 의견을 모두 동전 취급하면 각종 쌍방향 대화채널은 그야말로 커피 자판기만도 못한 수준에 머물 것이다. 그런 의견들을 잘 걸러내고 다듬어서 자원으로 활용하면 TV 발전에 기름진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알고 보면 여론은 가까운데 있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 shpark1@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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