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섭의 시네월드]트뤼포감독 대표작의 「줄앤짐」

  • 입력 1997년 1월 29일 20시 18분


1984년 프랑수아 트뤼포가 54세에 죽었을 때 누벨바그라는 영화의 위대한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그리고 우리는 뛰어난 로맨틱 리얼리스트를 잃었다. 그러나 트뤼포는 지구가 종말을 고하는 날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 「줄 앤 짐」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 여자 카트린(잔 모로의 연기는 마성 그 자체다)과 두 남자 줄과 짐의 30년에 걸친 사랑과 증오 그리고 열정과 죽음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1차세계대전을 전후한 두시대, 즉 화려한 벨 에포크시대와 음울한 대공황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원래 누벨바그는 60년대 청춘의 삶의 방식을 영상으로 승화시킨 사조다. 그래서 누벨바그 대표작들은 도회지에서 사랑하고 꿈꾸고 좌절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린다. 그런 점에서 「줄 앤 짐」은 누벨바그의 대표작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이 영화는 앙리 피에르 로셰가 75세에 쓴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줄 앤 짐」은 트뤼포의 모든 것, 그리고 그가 눈을 감을 때까지 다시 이르지 못한 영혼의 위대한 떨림이 느껴지는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트뤼포는 격렬하고 화려한 영화 수사학을 펼쳐 보인다. 급작스러운 스톱 모션, 의표를 찌르는 점프 컷 그리고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가로지르는 카메라의 급격한 이동. 20세기의 희망에 부풀었던 벨 에포크가 영화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청춘의 사랑은 1차대전의 발발과 함께 끝장나 버린다. 줄은 카트린과 함께 시골로 은둔하고 짐은 「20세기를 보기 위해」 전쟁터로 떠난다. 그리고 어둠과 침묵, 좌절과 관조의 시간이 흐르고 전쟁은 끝난다. 짐이 돌아와 세사람은 재회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복원되지 않는다. 사랑은 질투로 바뀌었고 정열은 식어버렸다. 그리고 치명적으로 그들은 중년으로 접어들었다. 돌연 카트린은 자동차에 짐을 태우고 동반 자살한다. 어떻게 보면 이 통속을 절한 치정의 이야기를 가지고 트뤼포는 역사의 한 시대를 읽고 그것을 자신의 시대인 60년대 젊은이들의 교과서로 만들었다. 사랑과 정열을 찾아나선 청춘들, 그리고 그들의 순간에의 집착과 급작스러운 추락을 말이다. 이 영화는 트뤼포가 남겨 놓은 21편의 영화들중에서 가장 재기가 넘치는 동시에 원숙한 걸작이다. 제작된 지 35년이 넘었지만 이 영화의 마력은 계속 영화비평가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강 한 섭<서울예전 영화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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