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40년간‘축적의 힘’…알츠하이머 치료 선두주자로 결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14일 03시 00분


1983년부터 치매 신약 개발 뛰어든 일본 기업 ‘에자이’의 끈질긴 도전
유수의 글로벌 제약사도 포기한 고위험 비즈니스에서 결실 맺어

알츠하이머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약으로는 처음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 한국에도 2024년 11월 공식 출시됐다. 
사진 출처 에자이 홈페이지
알츠하이머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약으로는 처음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 한국에도 2024년 11월 공식 출시됐다. 사진 출처 에자이 홈페이지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은 극심한 난이도의 고위험 비즈니스로 악명이 높다. 미국제약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1998∼2014년 임상을 진행한 알츠하이머 치료약 127개 중 123개가 개발이 중단됐다. 또 2008∼2018년에는 총 86개가 시험에 들어갔지만 단 한 건도 승인받지 못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인류의 숙원인 알츠하이머 정복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일본 제약사 ‘에자이(Eisai)’가 대표적이다. 에자이는 1970∼1990년대 알츠하이머 발병의 원인이 기억에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부족에 있다는 가설이 학계를 지배할 때 아세틸콜린 분해를 억제하는 최초의 알츠하이머 약 ‘아리셉트’를 개발한 회사다.

또한 에자이는 1990년대 이후 학계에서 알츠하이머 발병의 원인이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Aβ) 단백질로 인한 신경세포 손상 때문이라는 가설이 등장하자 아밀로이드 베타를 표적으로 삼는 치료제 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2023년 1월 미국 제약사 바이오젠과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는 ‘레켐비’ 개발에 성공하고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 문턱을 넘으며 ‘알츠하이머 근본 치료제’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에자이는 1983년 시장에 뛰어든 이래 40년 이상 치매 신약 개발에 매달려 왔다. 그리고 아리셉트의 성공으로 거둔 결실을 레켐비 개발에 쏟아붓고, 레켐비의 성공으로 거둔 결실을 다음 치료제 개발로 연결하며 알츠하이머 정복을 향한 단계적 여정을 지속하고 있다. 오랜 시간 한 우물을 파고 ‘축적의 힘’을 보여주면서 치매 치료 시장의 선두주자가 된 에자이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5년 4월 1호(414호)에 실린 관련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치매 분야 데이터와 경험의 축적

일본 제약사인 ‘에자이’ 본사의 나이토 하루오 최고경영자(CEO). 사진 출처 에자이 홈페이지
일본 제약사인 ‘에자이’ 본사의 나이토 하루오 최고경영자(CEO). 사진 출처 에자이 홈페이지

주로 복제약을 제조하던 에자이가 진정한 의미의 신약 개발 회사로 다시 태어난 계기는 창업자의 손자인 나이토 하루오가 연구개발(R&D) 실권을 잡은 후부터였다. 1988년 사장직에 오른 그는 신약 개발의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매출의 20∼30%를 연구개발에 투자했고 연구소를 30명 단위의 부서로 나눈 뒤 각 부서를 치열하게 경쟁시켰다.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센터를 건립해 글로벌 확장에도 박차를 가했다.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은 주요 전략적 결단에서 빛을 발했다. 첫 번째는 아리셉트의 독자 3상 임상을 결정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 제약사들도 한국 제약사들과 마찬가지로 신약후보물질의 임상 2상 데이터를 확인하면 글로벌 제약사에 권리를 판매하는 것을 관행으로 여겼다. 독자적으로 임상 3상을 끌고 갈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데다 가까스로 승인을 받는다고 해도 어차피 미국 판매망이 없어 협력사를 찾아야 하므로 일찌감치 해외 제약사에 손을 벌린 것이다. 하지만 나이토 CEO는 라이선스 아웃만 반복해서는 지식과 경험의 축적, 나아가 글로벌 제약사로의 도약이 요원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그는 아리셉트 후보물질의 2상 데이터가 잘 나오자 해외 제약사에 넘기지 않고 독자적으로 개발을 이어가는 승부수를 던졌다. 리스크가 컸지만 글로벌 회사가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1993년 12월 독자적으로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 3상을 개시했다. 이 승부수가 통하고 임상이 성공리에 끝나면서 1996년 FDA 승인을 받은 아리셉트는 단숨에 에자이를 글로벌 20위권 제약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연간 3000억 엔(약 3조 원)이 넘는 아리셉트의 판매 수익과 임상에서 얻은 지식, 경험은 고스란히 에자이의 다음 연구개발 여정과 투자를 위한 밑거름이 됐다.

●시장을 결코 떠나지 않는 집념

에자이의 최대 위기는 특허 절벽, 즉 아리셉트의 특허 만료와 함께 찾아왔다. 또 다른 신약을 내놓기 전인 2010∼2012년 미국, 일본, 유럽에서 차례로 특허가 끝나면서 빠르게 시장에 저렴한 복제약이 출시됐고 매출이 급락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무렵 알츠하이머 신약 개발은 리스크가 크고 불가능에 가깝다는 회의론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문 닫는 기업들도 속출했다. 하지만 나이토 CEO는 신약 개발을 남기고, 나머지 사업을 포기하는 정반대 선택을 했다. 전략 분야인 치매와 암만 남긴 채 다른 분야의 임상을 중단했고 두 분야와 관련 없는 자산을 매각해 회사의 몸집을 줄인 것이었다.

회사 안팎의 지각변동은 알츠하이머 신약 개발에 필요한 글로벌 자원과 역량이 에자이로 더욱 쏠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에자이는 경쟁사가 대부분 철수한 2012년 무렵, 현 레켐비의 후보물질에 대한 개발에 착수하는 한편 함께 시장에 남은 2014년 바이오젠과 공동 개발에 합의하는 등 알츠하이머 치료의 길을 계속 개척했다. 바이오젠과 협력할 수 있었던 것도 알츠하이머 치료에 특화된 회사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오랜 기간 이 분야에 헌신해 왔다는 브랜드 덕분에 파트너사들의 신뢰를 얻기도 수월했다.

이후에도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에자이는 결코 시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임상 3상을 마친 레켐비는 2023년 1월 FDA 승인을 통과했고, 2024년 5월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한국에서 승인됐다. 고홍병 한국에자이 대표는 “진행 중인 연구나 프로젝트가 실패해도 에자이는 연구를 축소하거나 중단하기보다는 거기에 참여했던 직원들의 노하우나 경험 등의 자산을 활용해 다시 도전했다”면서 “이렇게 시행착오 끝에 수집된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면서 40년간의 역사가 결실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에자이#아리셉트#레켐비#FDA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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