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가업, 승계만이 정답일까… 사업 영속성 고민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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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기업 매각도 승계
적절한 타이밍, 분할 매각이 유리
ESG 등 비재무적인 스토리로
기업 가치 극대화 노력 필요

많은 창업주들이 평생 일군 사업의 영속성 유지 차원에서 자녀를 비롯한 가족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가업 승계를 택한다. 그런데 최근 자녀들이 기업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거나 마땅한 후계자라 생각하지 않아 기업 매각을 검토하는 창업자가 늘고 있다. 기업이 자녀보다 더 나은 주인을 만나 성장의 날개를 달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세 부담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창업주들은 업종 전환이나 해외 진출, 새로운 성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가업 승계 대신 매각을 택한다. 중견기업 이상으로 회사 규모를 키우고 싶지만 투자 자금이나 인적자원, 해외 네트워크 등에서 한계를 느낀 나머지 부족한 역량을 채워 줄 수 있는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서다.

화장품 용기 제조업체 연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1983년 연우를 창업한 기중현 대표는 피땀 흘려 일군 회사를 업계 1위로 키워 냈지만 이를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많았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대신 더 크게 키울 수 있는 외부 파트너를 찾기로 결정했다. 마침 국내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인 한국콜마가 매수에 관심을 보였고 2022년 4월 두 회사는 주식 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창업주가 가진 지분의 55%가 약 2814억 원에 한국콜마에 매각됐다. 한국콜마는 인수 이후 연우와 협력해 친환경 용기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처럼 비즈니스가 지속되고 성장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매각 역시 넓은 의미의 승계로 볼 수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4년 3월 2호(389호)에 실린 성공적인 기업 매각 전략을 요약해 소개한다.

● 잘나갈 때 팔아라

회사를 좋은 가격에 매각하는 적절한 타이밍을 찾는 것은 주식의 매매 시점을 잡는 것과 같다. 오너들이 자주 착각하는 사실이 있다. 지금 잘되는 사업이 앞으로도 계속 잘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은퇴를 코앞에 두고 인수자를 찾아 나섰다가 시간에 쫓겨 싼값에 파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사업이 잘된다고 해서 향후에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대표적인 예가 골프장이다. 팬데믹 이후 골프 시장이 특수를 누리며 골프장 매각 시장에도 호황이 찾아왔다. 당시 골프장 소유주들은 골프 시장이 계속해서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누구도 선뜻 매각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골프 수요가 줄고 골프장 사용료 하락에 부동산 경기마저 얼어붙었다. 골프장 매각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며 수도권 기준으로 홀당 100억 원대 중반까지 치솟았던 가격이 현재는 절반 수준으로 급락했다. 기업도 주식처럼 기업 가치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되면 파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매출이 꾸준히 성장하고 회사가 잘나갈 때 팔아야 가장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적정 가치가 얼마인지, 얼마에 파는 게 좋을지 미리 알고 대비해야 한다.

● 한꺼번에 다 팔지 말라

오너 지분을 매각할 때는 전량을 한 번에 팔기보다 20∼30% 정도의 일정 지분을 남기고 나머지를 추후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매도자는 인수자의 네트워킹과 자본력을 통해 향후 기업 가치가 높아지면 나머지 지분에 더 높은 가치를 매겨 매각할 수 있다. 또한 자녀 지분을 통해 경영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거나 재투자를 통해 가업 승계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장민호 고려대 교수가 2000년 창업한 구강 스캐너 기업 메디트가 대표적 사례다. 2019년 유니슨캐피탈(UCK)이 3200억 원에 인수한 이후에도 창업주는 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2대 주주로 남아 경영에 참여했다. 이후 메디트는 매각을 통해 내수 시장을 넘어 해외 판로를 개척했으며 지난해 초 MBK파트너스에 2조 원 넘는 금액으로 재매각됐다. 창업주는 두 번째 매각 후 자신의 남은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 기업 가치 높일 히스토리 구상

기업 가치를 높여 좋은 가격에 매각하려면 재무적, 비재무적인 히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재무적 히스토리의 경우 특히 감가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매출이 아무리 많아도 적자가 나는 회사라면 인수에 관심을 갖는 곳이 거의 없다.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대규모 설비 투자는 자제하고 기존 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재무 지표를 우상향으로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요즘처럼 산업 추세가 빠르게 변하는 시기에는 어떤 비재무적 스토리를 기업에 입히느냐에 따라 매각의 성패가 좌우될 수 있다. 산업계에서 위상과 협력사와의 관계, 기업이 가진 고유의 역사와 유산 등을 강조해 기업 가치를 높여 줄 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환경 및 재생업이다. 몇 해 전만 해도 환경 및 재생업은 가정이나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폐기물의 수집, 운반, 처리 및 원료 재생 등을 맡기 때문에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다’는 뜻의 ‘3D 업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이 전 세계의 메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이 업종의 성장성이 높이 평가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SK에코플랜트는 연관 업종 기업을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꾀하는 ‘볼트온(bolt-on) 전략’으로 건설회사에서 환경재생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앞으로 매각을 계획하고 있는 오너라면 현재 기업의 업종이 속한 산업의 트렌드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요소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홍성표 삼일PwC파트너 sungpyo.hong@pwc.com
정리=배미정기자 soya1116@donga.com
#가업#승계#창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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