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진실보다‘ 믿고 싶은 거짓’ 매력적?… 불안한 탓”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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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불안은 비과학적 사고의 주범
거짓 정보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확실하고 빠른 해답 좇는
‘인지적 종결 욕구’ 경계해야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진실이 아니거나 진실이라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쉽게 현혹되는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해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 즉 사람들이 진실보다 ‘믿고 싶은 거짓’을 택하는 동기와 불안 등
 감정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동아일보DB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진실이 아니거나 진실이라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쉽게 현혹되는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해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 즉 사람들이 진실보다 ‘믿고 싶은 거짓’을 택하는 동기와 불안 등 감정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동아일보DB
개인이나 조직을 둘러싼 환경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과학적 사고를 가로막는 강력한 변수 중 하나는 바로 ‘불안’이다. 초조한 개인에게는 애매하고 지루한 진실보다 빠르고 명쾌한 거짓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따라서 불안을 조장하는 거시적인 배경을 무시한 채 미시적으로 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오히려 현상의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을 방해하기 쉽다. 주변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고 정보의 진위를 가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오늘날, 어떻게 하면 개인과 조직이 허위 정보와 유사 과학에 맞서 더 분별력 있는 ‘근거 기반’의 사고를 할 수 있을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이 사회심리학자 최인철 서울대 교수를 만나 사회 전반과 조직 내부에서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잘못된 믿음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해법을 모색했다. DBR 2023년 8월 2호(375호)에 실린 인터뷰 일부를 요약해 소개한다.

―의사결정자들이 거짓 정보를 잘 거르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불안이 그중 하나다. 불안한 사람들은 빠른 해답을 좇는다. 그런데 대개 유사 과학은 단순 명료한 반면에 과학에는 많은 단서 조항이 달린다. ‘이 조건에서는 이게 맞는데 저 조건에서는 저게 맞다’는 식으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고 ‘경우에 따라 다르다’라는 결론밖에 내놓지 못한다. 당장 ‘예’와 ‘아니요’같이 답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즉각적인 가짜 뉴스가 진실보다 유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불안은 개인 차원뿐 아니라 집단 차원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렇게 애매하고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나 빠르게 종착역에 도달하려는 심리를 ‘인지적 종결 욕구(NFC·Need for Cognitive Closure)’라 부른다. 인지적 종결 욕구가 강한 개인과 집단일수록 하나의 ‘정답(The answer)’보다는 ‘아무 답(Any answers)’이든 내놔야 한다는 강박이 강하다. 그러다 보면 잘못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수용하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 쉽다. ”

―잘못된 믿음을 고수하는 것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나.

“임직원들의 인지적 종결 욕구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이를 새로운 리더십에 요구되는 덕목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에이미 에드먼드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조직의 리더가 ‘심리적 안전감’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인지적 종결 욕구가 강한 리더일수록 구성원의 말을 듣기에 앞서 자기가 결정을 내리고 정리까지 끝내기 때문에 조직 내 심리적 안전감을 저해한다.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는 리더가 표면적으로는 결단력이 있고 카리스마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정보가 혼재돼 있고 불안이 높은 환경에서는 심리적 안전감을 떨어뜨려 궁극적으로 편향된 정보처리와 의사결정을 촉진할 수 있다. 심리적 안전감은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개인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골자로 한다. 이를 조직 차원에서 보장하려면 상충된 여러 정보에 대한 검증과 날 선 토론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고, 이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리더십 측정 항목과 척도가 바뀌어야 한다.”

―토론과 검증의 문화가 중요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과학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느냐는 개인이나 조직이 얼마나 풍부한 반론을 만들어 내고 정보의 교차 검증을 루틴으로 삼느냐에 달려 있다.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문화가 정착되려면 리더가 얼마나 심리적 안전감을 보장하는지도 측정해야 하지만 회사의 ‘도덕 기반(moral foundations)’도 알아야 한다.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가 주창한 도덕 기반 이론에 따르면 집단마다 도덕성 판단의 근거 혹은 기초가 다르다. 그런데 도덕 기반이 판단에 개입되면 구성원들이 내는 의견의 ‘내용’이 아니라 ‘어조’가 중요해진다. 의견의 내용이 충분히 논리적이고 사실에 가깝다 할지라도 어조에 따라 조직 내 긴장이나 적대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충성이나 권위가 도덕 기반이 되는 집단에서는 배신을 암시하거나 위계를 흔드는 발언,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발언이 내용의 진위와 무관하게 배척당한다. 일단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조직 기저에 깔린 도덕 기반을 정확히 이해해야 구성원 간 불필요한 오해 없이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다.”

―신속한 결단이 필요하거나 모든 정보를 검증할 시간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나.

“그래서 의사결정자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전문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의 직무와 분야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 즉 ‘도메인 지식’이 축적된 정도다. 매번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데이터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할 수 있으려면 도메인 지식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과학적 태도다. 도메인 지식과는 별개로 과학적 추론의 규칙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인과 추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경영에 필요한 전문성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인간이 직면하는 여러 정보 처리와 판단의 어려움을 개인의 책임, 즉 인지적 게으름이나 검증 노력의 부족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인지적 자원을 최대한 아끼려는 게 당연하고, 소위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 더 특이한 것이다. 다만 최소한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리더라면 풍부한 도메인 지식과 과학적 추론의 규칙을 학습해 이런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불안#믿고싶은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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