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삼성 “1분기 돌파구 찾아라”… ‘전시’ 방불케하는 전략회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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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X부문 15, 16일 글로벌전략회의
통상 ‘연간전략 논의’ 관행과 달리
단기전략 놓고 하루 13시간 격론
“환율-원자재값 부담… 상황 악화”

“내년 1분기(1∼3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1분기에 돌파구를 못 찾으면 내년 전체가 힘들 겁니다.”

15, 16일 양일간 진행된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 글로벌 전략회의는 마치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통상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6시경 마무리되던 회의는 이번에 오후 9시를 훌쩍 넘겼다. 각 사업부 고위 경영진과 해외법인장들은 식사도 잊고 격론을 이어갔다. 회의에 참석한 고위 임원 A 씨는 “환율, 원자재가 등 외부 요인이 너무 많아 회의가 길어졌다. 시차 때문에 오후에 (회의를) 시작한 유럽 등 해외 지역 경영 상황이 특히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회의는 매년 6월, 12월 두 차례 개최된다. 각 사업부장과 임원들이 참석하고, 해외법인장도 화상으로 참여한다. 연말 회의의 주요 의제는 다음 해 전체 투자 및 판매 전략이다. 지난주엔 한종희 DX부문장 주재로 모바일경험(MX)사업부,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생활가전(DA)사업부 회의가 먼저 진행됐다. 22일에는 경계현 사장이 주재하는 반도체(DS)부문 각 사업부 회의가 예정돼 있다.

19일 삼성전자 관계자들에 따르면 DX부문 전략회의에서는 당장 내년 1분기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가 주요하게 논의됐다고 한다. 올 하반기(7∼12월) 실적이 크게 악화된 데 이어 내년 1분기 ‘바닥’을 찍을 것으로 예측되자 단기 전략부터 챙긴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도 내년 상반기(1∼6월)가 가장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2023년 경영계획도 10월 수립 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고 했다. 전략회의 참석자인 고위 임원 B 씨는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물류비는 일부 회복됐지만 원자재 가격 부담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유럽의 경우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가전과 같은 내구재 소비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연간 경영계획 손질에 들어간 곳은 삼성전자뿐만이 아니다. SK, 현대자동차, LG를 비롯한 다른 그룹들도 가파른 금리 인상과 소비 침체라는 악재 속에서 예정된 투자 계획을 철회하거나 인력 재배치 등을 서두르고 있다. SK 계열사의 C 대표는 “내부적으로 내년 2분기까지 계속 내리막일 것이라 보고 (계획을) 보수적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내년 1분기 경기 바닥” 전략 부심… SK-LG도 계획 손질


‘전시’ 같은 글로벌전략회의

“1분기 돌파구 못찾으면 1년 힘들어”
전경련 “수출 증가율 0.5% 그칠것”
기업들 투자 조정에 인력 재배치도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은 1분기(1∼3월) 14조1214억 원을 기점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1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4분기(10∼12월) 영업이익 전망 평균치는 8조196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9%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1분기에는 골이 더 깊어져 영업이익이 올해 1분기보다 50.9%나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1분기는 모바일경험(MX)사업부의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 S23’, 영상가전(VD)사업부의 신제품 TV 출시가 집중된 시기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고위 임원 A 씨는 “경쟁사의 점유율을 뺏어서라도 1분기에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연간 성과를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2일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글로벌 전략회의 분위기도 지난주 디바이스경험(DX)부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TV, 가전 등 소비재에 미친 경기 침체 여파가 고스란히 글로벌 반도체 수요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19일 보고서를 통해 “4분기 메모리 수요가 예상을 하회했다. (삼성전자는) 감산 결정이 없으면 내년 2분기(4∼6월)부터 메모리 부문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지난달 18일 마무리된 LG그룹 사업보고회에서도 절박한 위기의식이 공유된 것으로 전해졌다. LG 관계자는 “올해 디스플레이와 생활건강 등 그룹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이 무너지면서 사업보고회 내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며 “내년도 공급망 및 재고 관리 리스크에 대해 대대적인 재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3분기(7∼9월)까지 1조2000억 원의 적자를 낸 LG디스플레이는 국내 TV용 액정표시장치(LCD) 생산을 연내 종료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0월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 당시 생산 종료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6개월∼1년가량 앞당기겠다고 했는데 이마저도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론, TSMC 등 글로벌 경쟁사들에 이어 일찌감치 투자 규모 하향 조정에 나섰다. 올 3분기 누적 12조9000억 원을 기록한 생산시설 투자 규모를 내년에는 올해 대비 50% 이상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경영활동 위축으로 그간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 온 수출 전망에도 먹구름이 낄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출액은 오히려 늘었다. 2020년 5125억 달러에서 지난해 6445억 달러로 25.8% 증가했고, 올해도 11월까지 이미 6291억 달러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왔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수출기업 150개사를 대상으로 ‘2023년 수출 전망 조사’를 진행한 결과 내년 수출은 올해 대비 0.5%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원자재가 상승 및 고환율로 채산성(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 수준)도 하락할 것으로 조사됐다. 채산성이 ‘악화될 것’(28.0%)이란 응답이 ‘개선될 것’(18.7%)이란 응답보다 더 많았다. 채산성 악화 요인으로는 △원유, 광물 등 원자재 가격 상승(54.7%)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비용 증가(14.3%)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한 이자비용 상승(11.9%) 등이 꼽혔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가 내년 상반기까지 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으나 최근 지표들을 보면 회복 시기가 점점 더 늦춰지고 있다”며 “기업들이 위기관리 체제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내년 불황에서의 생존 여부가 갈리는 곳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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