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왜 최신 스마트폰을 무서워할까[이원주의 날飛]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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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飛’는 영공 수호 임무 중 순직한 공군 조종사 故 심정민 소령의 명복을 빌며 뒤늦게나마 유가족에 마음 깊이 위로 말씀을 드립니다.
대형 항공기가 스마트폰을 무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쥐를 무서워하는 코끼리 같은 느낌입니다. 정확히는 최신 스마트폰 기술인 5G가 항공 안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미국에서 강하게 제기됐습니다. 여기에서는 왜 유독 5G가 문제가 되는지, 또 이 문제가 왜 유독 미국에서 강하게 터져나왔는지에 대해 반걸음만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이 내용은 항공 유튜브인 ‘떴다떴다 변비행’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아래 영상을 먼저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 아래 적어드린 주소에 들어가서 기사까지 읽으시면 더 상세히 내용을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항공기 5G 사용 괜찮은 걸까 [떴다떴다 변비행]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20125/111426844/1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이번 논란의 핵심은 비행기에 장치된 전파고도계(Radio Altimeter)와 5G 주파수 간 간섭입니다. 여기서는 ‘혼선’이라는 익숙한 단어를 쓰겠습니다. 이동하는 차에서 라디오를 듣다 보면 주변 환경에 따라 지직거리거나 다른 방송이 섞여 들리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항공업계는 이런 경우가 전파고도계에서도 생길까봐 우려하고 있는 겁니다.

전파고도계가 달려있는 위치와 전파고도계 모양(작은사진) 자료: 에어버스
전파고도계가 달려있는 위치와 전파고도계 모양(작은사진) 자료: 에어버스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스마트폰 사이에 혼선이 왜 생길까요. 미국은 지난해 새로운 5G 스마트폰 서비스용 주파수로 3.7GHz~3.98GHz 대역을 할당하고 이를 각 통신사에 경매로 분배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200MHz만 더하면 전파고도계가 사용하고 있는 4.2GHz대 주파수 대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항공업계는 두 장치의 주파수 대역이 너무 가깝다고 우려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 사용하는 5G 스마트폰 주파수대역. 자료: 퀄컴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 사용하는 5G 스마트폰 주파수대역. 자료: 퀄컴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3G, 4G(LTE 등) 때는 이 같은 우려가 없었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3G와 4G 주파수는 전파고도계 주파수인 4.2GHz 대역과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3G 서비스 대역은 가장 높은 주파수도 2.1GHz, 4G 서비스 대역도 2.5GHz 부근에서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이 부근의 주파수로는 5G급 속도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5G와 4G 서비스 비교. 데이터통신 속도 외에도 지연응답시간(반응시간) 등이 크게 줄어들어 자율주행 등에 필수적인 기술이 바로 5G입니다. 각 통신업계가 5G 서비스에 신경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료: 삼성전자
5G와 4G 서비스 비교. 데이터통신 속도 외에도 지연응답시간(반응시간) 등이 크게 줄어들어 자율주행 등에 필수적인 기술이 바로 5G입니다. 각 통신업계가 5G 서비스에 신경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료: 삼성전자


통상 데이터 통신 속도가 빨라지려면 더 높은 주파수 대역을 써야 합니다. 주파수 대역이 높을수록 더 넓은 대역폭(Bandwidth)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역폭은 데이터통신 속도를 결정짓는 핵심입니다. 차선이 많은 넓은 도로에서 더 많은 차들이 이동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을 실어나를 수 있는 것처럼 대역폭이 넓으면 더 많은 데이터들이 한 번에 오갈 수 있어 통신 속도가 빨라집니다.

한 통신사의 2013년 LTE 서비스 속도 경쟁 광고. 대역폭이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터넷 캡처.
한 통신사의 2013년 LTE 서비스 속도 경쟁 광고. 대역폭이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터넷 캡처.


우리나라 통신사들은 4G(LTE) 서비스의 경우 3GHz 아래쪽 주파수대역을 사용하고 한 번에 20MHz의 대역폭을 할당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5G 서비스의 경우 주파수대역 3.5GHz를 활용하면서 한 번에 받는 대역폭이 100MHz로 늘어났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현재 5G 서비스를 위해 8~10GHz 대역이나 28GHz 대역 등 초고주파수대를 활용하는 방안도 준비하고 있는데, 이 주파수를 쓰게 되면 통신사들이 받는 대역폭은 1GHz정도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같은 5G 서비스라도 더 빨라질 수 있는 겁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5G와 4G(LTE)대역폭.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5G와 4G(LTE)대역폭.


다만 이처럼 높은 주파수대역을 쓰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전파는 단순 계산하면 주파수가 2배가 될 때마다 같은 거리에서 수신할 수 있는 강도는 4분의 1로 줄어들게 됩니다. 수신율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통신업계는 이 같은 문제를 더 강한 전파를 쏘는 방법으로 해결했습니다. 미연방항공국(FAA) 설명을 보면 미국 5G 서비스 중계국은 전파 출력을 1585W까지 전파를 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기준(631W)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FAA는 이처럼 높은 출력으로 발사된 전파가 항공기의 전파고도계와 혼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미국과 프랑스의 5G 중계국 특성 비교. 출력은 미국 중계소가 더 높고, 각도도 하늘을 향해 더 기울어져 있습니다. 자료: FAA
미국과 프랑스의 5G 중계국 특성 비교. 출력은 미국 중계소가 더 높고, 각도도 하늘을 향해 더 기울어져 있습니다. 자료: FAA



미국 통신사들은 FAA의 이 같은 주장에 강하게 반박합니다. 사실 이번 문제의 근간에는 미 항공당국이 다소 느슨한 기준을 오랜 기간 유지하면서 불거진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FAA는 전파고도계의 감항성표준을 정할 때 혼선 방지 규정을 두면서도 대역폭 규제에는 ±10%의 제법 큰 폭 오차를 허용했습니다. 이 결과 전파고도계가 실제 영향을 주고받는 주파수 대역은 4.2~4.4GHz가 아니라 3.78~4.84GHz 대역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는 비행기가 활주로에 접근하는 높이에서 전파고도계 외에 주변 주파수에 강한 전파를 쏘는 장비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미국이 할당한 5G 주파수가 이 ‘오차 대역’과 겹친 겁니다. (3.7GHz 이하 대역을 사용하는 나라들에서는 상대적으로 문제가 적게 제기됐습니다.)

전파 고도계 대역폭 필터 특성과 5G 서비스 전후 주변 주파수 비교. 원래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던 3.7~3.98GHz 영역에 강한 전파가 등장하면서 혼선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자료: 미국 항공무선기술위원회(RTCA)
전파 고도계 대역폭 필터 특성과 5G 서비스 전후 주변 주파수 비교. 원래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던 3.7~3.98GHz 영역에 강한 전파가 등장하면서 혼선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자료: 미국 항공무선기술위원회(RTCA)


원인이 누구에게 있든 문제는 안전입니다. 전파고도계는 거의 모든 항공안전에 관여합니다. 하늘에서 날 때는 다른 비행기와 충돌을 미리 경고해 주고 이착륙 때는 지형지물에 부딪히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다다를 때는 자동착륙 장치를 작동하거나, 고도를 수시로 불러줘서 수동으로 착륙하는 조종사들이 안전하게 전방을 주시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전파 고도계는 다양한 비행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데 필수적으로 활용되는 핵심 장비입니다. 자료: RTCA
전파 고도계는 다양한 비행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데 필수적으로 활용되는 핵심 장비입니다. 자료: RTCA



그런데 이 전파고도계가 혼선 등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위 ‘변비행’ 영상에도 언급된 터키항공1951편 착륙 사고(2009년 2월 25일)에 전파고도계 고장의 위험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2009년 2월 2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추락한 터키항공 1591편. 자료: 네덜란드안전위원회(The Dutch Safety Board)
2009년 2월 2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추락한 터키항공 1591편. 자료: 네덜란드안전위원회(The Dutch Safety Board)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사고 당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착륙을 준비하던 터키항공 1951편은 다른 항공기와 거리를 두느라 다소 높은 각도에서 활주로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럴 경우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조종사들의 눈과 손이 바빠집니다. 조종사들은 자동 착륙 기능을 켜고 착륙 절차를 점검했습니다.

터키항공이 착륙 직전 비행한 수직경로. 통상적인 비행 경로(점선)보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오기 시작했고(푸른 선) 결국 활주로에 못 미쳐서 착륙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료: 네덜란드안전위원회
터키항공이 착륙 직전 비행한 수직경로. 통상적인 비행 경로(점선)보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오기 시작했고(푸른 선) 결국 활주로에 못 미쳐서 착륙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료: 네덜란드안전위원회


그러던 중 지상에서 약 2000피트(약 600m) 상공을 지나가던 비행기의 전파고도계가 갑자기 오작동을 일으킵니다. 표시된 고도는 ¤8피트. 이 때문에 자동착륙장치는 비행기가 활주로에 닿기 직전이라고 판단하고 ‘플레어 모드’를 작동시킵니다. 플레어 모드는 비행기 바퀴가 땅에 닿기 직전 머리를 들고 속도를 줄여 충격을 완화하는 동작입니다. 이 때 비행기는 엔진 출력을 최소로 줄여버립니다. 결국 이렇게 줄어든 속도를 회복시키지 못한 비행기는 활주로에 닿기 전 추락해버리고 맙니다.

터키항공 1951편 사고 현장 사진. 꼬리 부분이 동체 앞부분과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보아 꼬리 쪽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료: 네덜란드안전위원회
터키항공 1951편 사고 현장 사진. 꼬리 부분이 동체 앞부분과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보아 꼬리 쪽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료: 네덜란드안전위원회


물론 터키항공 사례는 사고까지 이어진 극단적인 경우이고, 현재는 이 같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조종사 지침도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전파고도계가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안전에 영향은 있을 수 있습니다. FAA는 전파고도계 혼선 가능성이 있는 공항에 항공기가 착륙할 때 정밀접근계기비행(ILS를 활용한 모든 착륙)과 성능기반항행 착륙, 조종을 도와주는 HUD(Head up display) 장치 사용 등을 모두 금지했습니다. 조종사들은 공항의 방위와 거리, 항공기 속도와 고도를 계산하고 항공차트와 일일이 비교하는 복잡한 절차를 따라 착륙해야 합니다. 이럴 경우 구름이 조금만 낮게 껴도 착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전파고도계가 5G 주파수에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어 조종사들에게 이 사실이 공지될 경우 금지되는 착륙 방식들. 첨단 장비를 이용한 거의 모든 착륙방법을 활용할 수 없게 됩니다. 자료: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 KOREA)
전파고도계가 5G 주파수에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어 조종사들에게 이 사실이 공지될 경우 금지되는 착륙 방식들. 첨단 장비를 이용한 거의 모든 착륙방법을 활용할 수 없게 됩니다. 자료: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 KOREA)


▶‘정밀접근계기비행’과 ‘성능기반항행’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1002/103216422/1

미국 통신사들은 일단 한 발 물러섰습니다. 공항 주변 5G 서비스 시작을 연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 통신사들이 주파수를 따내는 데 들인 돈은 총 89조 원에 이릅니다. 그만큼 통신사들의 손해가 막심할 겁니다. 일단은 물러섰지만 언제까지 물러선다는 보장도 현재까지는 없는 상태입니다. 이제 공은 다시 항공업계로 넘어왔습니다. 비싼 돈을 내고 5G 스마트폰을 샀는데 공항에서 쓸 수 없다면 소비자들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해당 주파수 대역 활용은 국제적인 추세인 만큼 되돌리기도 어렵습니다. 안전과 효율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항공업계의 혜안이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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