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깊어져가는 재산세 딜레마…이념이냐, 표심이냐

김광현 기자 입력 2021-04-09 12:29수정 2021-04-0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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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31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선대위원장은 “정부 여당은 주거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정책을 세밀히 만들지 못했다”면서 “무한책임을 느끼며, 사죄드린다”밝히며 부동산정책 실패를 사과했다. 2021.3.31/뉴스1
이번 4.7 재보선 여당 참패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분분하다. 공통점은 야당이 잘해서 찍었다기보다는 여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라는 지적이다. ‘민심’이 표심이니 동어반복이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민심이 여당에 참패를 안겨다 주었을까.

김상조 대통령 정책실장, 박주민 더불어민주당의 사례에서 극명히 드러난 집권층의 위선, 부동산 정책의 불만에 불을 지른 LH사태 등 다양하겠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조세저항’이라고 본다. 그 중에서도 꼭 집어 ‘재산세’다.

● 보유세 인상, “터질 것이 터졌다”
세제 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배제된 채 당청이 주도한 일련의 재산세 인상 폭주를 바라보던 세제 전문가들은 4.7 재보선의 결과를 두고 “터질 것이 터졌다”라는 반응이다. 역사가 반복되듯이 이미 수차례 지켜봐왔던 터였다. 좀 길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 주도로 발간한 ‘실록 부동산 정책 40년’의 관련 대목을 인용해본다.
1986년 5월 7일 정석모 내무부 장관이 사퇴서를 제출했다. 이른바 ‘재산세 파동’의 여파였다. 내무부가 그 해 1월 초 전국 건물 평균 과표를 3.4% 인상하면서 건물 크기에 따라 적용하는 가감산율을 조정했다. 과표를 약간 올리고, 세율을 조금 올렸을 뿐이지만 곱하기의 상승작용에 따라 재산세 인상 폭이 매우 컸던 것이다.

30년 동안 지방세를 다뤄 ‘살아있는 지방세 사전’으로 불리던 김대영 행정자치부 전 지방세제관은 “‘세금 잘못 건드리면 코피 터진다’는 세무 직원들 사이의 속설이 증명된 사건이 었다”며 “‘장바구니세’ 또는 ‘주부세’로 불리는 보유세는 그만큼 민감하다”고 회고했다. (2부 어떤 정책 폈고, 왜 못 잡았나 “선거 앞두고 어떻게 세금 올리나…”)

과거 경험을 무시하고, 이념적 정책 목표에 사로 잡혀, 보유세를 무리하게 건드렸다가 이번에 제대로 코피가 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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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세 파동의 결과 정석모 장관은 그해 8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차기 정부인 노태우 정부는 1989년 실제가보다 너무 낮게 책정된 토지 과표를 현실화하겠다는 취지로 1994년까지 토지과표를 공시지가의 60%까지 올리겠다는 ‘과표편실화 5개년 계획’을 1989년 발표했다. 즉각 토지 소유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내무부는 국정감사에서 1991년 9월 “94년까지 공시지가 대비 60%로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과표현실화 계획을 재검토하는 단계에 있다”고 실토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에서도 세제개혁 논의가 있을 때마다 부동산 세제의 큰 방향을 ‘보유세 강화, 거래세 인하’에 두고 줄기차게 보유세 강화를 시도했다. 이에 대한 종합판이 노무현 정부의 2005년 이른바 8.31대책이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로 구성되는 보유세 가운데 종부세를 크게 손댔다. 8.31 당시 종부세 대상자는 ‘기준시가 6억원 초과’ 주택으로 가구별 합산이었다. 전체 세대의 1.6%에 해당됐다.

노무현 정부가 이 정책을 추진하여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그해 제4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의 참패를 시작으로 2008년 총선까지 약 3년간 이어진 민주당 암흑기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시각도 있다. 강남 서초 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와 분당, 과천은 이전부터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강세지역이었지만 종부세 시행이후 다른 지역까지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는 분석이다.

이번 4.7선거 결과는 노무현 당시 선거와 판박이지만 심한 민심 이반의 강도는 더 높았다. 강남 3구는 물론이고 25개 구 모두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우세를 보였다.

● 재산세는 장바구니세, 민심의 화약고
세금 인상 특히 ‘장바구니세’라고 불리는 재산세 인상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담당 관료들은 수십년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지켜봐왔다.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저격을 당하고 유신체제가 종말을 맞은 근본 원인이 1977년 부가가치세 도입에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전에는 시위라고 해봐야 대학생들이나 하는 것이었지만 부가가치세 도입에 따른 자영업자의 불만으로 인해 부마사태부터 시민이 가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부마사태 현장에 직접 내려가 민심 이반을 두 눈으로 목격한 뒤 결행을 결심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돼 있다. 당시 전국에서 자영업자의 비율이 가장 높았던 지역이 바로 부산 마산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은 막판에 ‘샤이 진보’가 나서 역전해 줄 것을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 그런 표는 없었다. 유권자들은 술자리에서 일반 정치에 대해 목소리를 겉으로 한껏 높이지만 세금문제는 크게 떠들지 않는다.

그러나 속으로 하는 반발, 속으로 가는 칼이 더 무섭기 마련이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직결된 문제, 특히 재산세처럼 실현되지 않은 이득에 대한 과세이면서, 양도세처럼 이득이 있을 때 한 번 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매년 주구창창 내야하는 보유세에 대한 반발이야말로 ‘샤이 반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반발이 투표장에서 어디에 도장을 찍어야할 지로 직결되는 것이다.

● 재산세 이대로 두고 내년 대선 치를 수 있을까?
이번 선거 전 정부는 서울시 종부세 대상 공동주택이 전체의 16%라고 밝혔다. 아파트로 한정하면 이 비율이 25%까지 높아진다. 종부세 대상 아파트(51만5084채) 가운데 서울이 78.9%에 해당한다. 여기에 개별단독주택(열람개시시점·3월 19일)과 토지(4월 5일) 공시가격이 잇따라 공개되자 불만은 폭발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년 대비 평균 19% 올랐다. 노무현 정부 당시 2007년의 22.7%에 이어 14년만의 최고치다. 지난해 상승률 5.98%와 비교해도 3배 이상이다.

공시가격이 오름에 따라 종부세 기준인 6억원을 넘어 종부세 대상이 된 공동주택이 전국 111만 가구다. 작년 약 69만 가구 정도였던 것에 비해 42만 가구 이상이 늘었다.

문제는 ‘공시가 폭탄’은 올해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9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으니 내년 역시 대선을 코 앞에 두고 한번 더 폭발할 것이다.

정부가 지난해 확정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따라 내년에도 실제 거래가격의 등락에 상관없이 공동주택은 1.3%포인트, 단독주택은 2.2%포인트, 토지는 3%포인트가 각각 오르도록 설계돼 있다.

공시가격은 부동산 관련 세금 등을 부과하기 위한 기준으로 활용하기 위해 매년 1월1일자를 기준으로 가격을 결정한 뒤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받기 위해 공개하도록 정해져있다.

또 단독주택과 토지의 공시가격 상승폭을 결정하는 기준가격인 표준지 공시가격과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은 올해 12월 하순에 공개된다. 내년 대선을 불과 3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이다.

정책보다는 선거에 더 장점과 감각을 갖춘 이번 정부와 여당이 이미 보유세율 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찰 대로 찬 마당에 여기에 곱하기를 해서 최종 세액을 산정할 공시가격까지 오르게 놔둔 채 차기 대선을 치를 지 의문이다.

● 이념과 표의 딜레마

청와대가 4.7보선 직후인 어제 부동산 부패 청산의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더욱 낮은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부동산 투기근절은 해방 이후 모든 정부가 틈만 나면 강조해오던 사안이다. 종합부동산세를 위시한 보유세 인상은 투기근절 뿐만 아니라 현 정부의 이념적 색채가 가장 강하게 가미된 정책이다. 다만 이에 대한 후과(後果)가 있기는 있으리라 짐작했겠지만 이렇게 클 줄은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깨달았을 것이다.

앞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에 대한 속도 조정과 함께 종부세 대상 기준(공시가격 9억 원, 다주택자 6억 원)의 상향 조정이 본격적으로 거론될 것이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작년 4.15총선에서 1주택자에 대해 보유세 경감을 언급했다가 유야무야한 바 있다. 앞으로 이 부분도 집중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양도소득세는 보유세 강화에 따라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반드시 낮춰야할 사안지만 복지 확대에 따른 세수 문제가 걸려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 방향으로 정책 수정을 했다가는 현 정부의 정체성에 금이 가고, 그대로 두자니 표로 직결되는 민심이 두려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딜레마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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