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 기대에 “원자재 미리 구매하자”…인플레 우려도 증폭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9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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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자재 가격이 줄줄이 수년 만에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10여년 만에 ‘원자재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감에 각국 정부가 재난 극복을 위해 쏟아 부은 과잉 유동성이 맞물리며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18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현물 가격은 2.81% 오른 t당 8650.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2년 9월 이후 8년 반 만에 최고치다. 산업 전반의 원자재로 쓰이는 구리는 경기 회복의 척도 역할을 해 ‘닥터 코퍼’로 불린다. 2차전지 소재로 각광받는 니켈은 6년 6개월 만에, 전자제품 마감재에 들어가는 주석은 8년 만에 최고가를 갈아 치웠다.

옥수수, 대두 등 국제 곡물 가격도 2014년 초반 이후 최고가를 다시 쓰고 있다. 콩은 1부셸(27.2kg)당 13.75달러로 지난해 4월 저점에 비해 67% 급등했다. 지난해 4월 ‘마이너스 가격’까지 갔던 국제 유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제리를 찾는 모습이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원유(WTI)는 배럴당 60.53달러로 13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김세완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 회복 기대가 커지면서 원자재를 미리 구매하는 수요가 늘었고 막대하게 풀린 유동성이 원자재 투자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며 “수요와 공급이 동반 상승해 장기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슈퍼싸이클에 진입할 수 있다”고 했다.

원자재·곡물 가격 상승은 국내 물가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월 생산자물가는 전달보다 0.9% 올라 2017년 1월(1.5%) 이후 4년 만의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특히 파(53.0%) 호박(63.7%) 닭고기(42.8%) 달걀(34%) 등이 급등해 농림수산품 물가는 7.9%나 뛰었다. 2년 5개월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1월 수입물가도 전달보다 2.8% 올랐다. 수입물가는 한 달 정도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다.

국내 산업계는 코로나19 위기를 버텨내며 수출로 선방했는데 다시 원가 부담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2~3년 전 국내 기업들이 불경기를 예측하고 원자재 구매를 줄인 상황에서 최근 가격이 급등해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며 “기업들이 수입자금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금융 지원 등의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했다.

정부는 19일 ‘제3차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더딘 회복 속에 풍부한 유동성이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인플레이션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며 “곡물, 원유 등 분야별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했다.

세종=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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