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인하 협조했지만… 속앓이하는 이통3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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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억 원 영업손실 감수하고 ‘25% 약정할인’ 소송 포기로 급선회
정부와 대립 피했지만 나쁜 선례 우려…일각 “가격통제, 사회주의적 발상”

“5G 선점 한중일 경쟁 치열한데 정부 눈치 보느라 투자여력 줄어…
보편요금제 등엔 적극 목소리 낼것”

“정부가 회사의 경영 판단을 쥐락펴락한 셈이어서 앞으로의 기업 환경에 안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동통신 3사의 요금할인 정책 수용 소식을 전한 지난달 29일 한 통신사 임원은 이번 결정이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휴대전화기를 구입할 때 지원금 대신 받는 선택약정 할인율을 20%에서 25%로 올리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통신비 인하 정책의 ‘첫 단추’였다. 통신사들은 정부 정책에 따를 경우 일어날 수천억 원의 영업 손실과 주주 피해를 이유로 법리 검토를 마치고 행정소송까지 준비했었다. 하지만 결국 입장을 번복하게 한 것은 과도한 시장 개입 아니냐는 얘기였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의 임직원 대부분은 이날 오후 늦게 ‘이통 3사가 정책을 차질 없이 이행하기로 했다’는 정부 발표가 보도되기 전까지 회사의 입장 선회 사실을 몰랐다. A통신사 간부는 “이런 식으로라면 요금 할인 폭이 25%가 아니라 30%, 35%로 늘어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혀를 찼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5세대(5G) 기술 선점을 위한 한중일 경쟁 등 대외 여건이 만만치 않은데 국내에서는 정부 눈치를 보느라 투자 여력까지 떨어졌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날 일부 회사는 주주 측이 경영진에 배임 책임을 물을 경우 소송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며 아예 입장 표명을 꺼리기도 했다.

6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선택약정 할인율 인하안을 발표한 뒤 통신업계는 강하게 반발하며 ‘소송 불사파’가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와 맞서 봤자 실익이 없다는 ‘소송 회의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통신사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요금 담합 조사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실태 점검 등 전방위 압박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서 경영진 법정 구속 등의 판결로 정부와의 대립각을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통신사들은 선택약정 할인 폭이 늘어도 소비자들의 체감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15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기존 선택약정 가입자에 대한 할인 소급 적용은 사실상 힘들어 신규 가입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에 대한 실질적인 실익 없이 정부가 ‘기업이 정책에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그널(신호)만 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신사가 정부에 투항하는 모양새에 대해 우려하기는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한 인터넷업체 관계자는 “통신업이 규제산업이긴 하지만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정부 행보는 걱정스럽다”면서 “통신업체들이 요금 인하 부담을 스타트업 등 콘텐츠업체들에 분담시키려 하는 등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통신사들은 이번 정책 수용이 보편요금제 등 앞으로 예정된 통신 정책에 무조건 협조하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균등 분배를 우선시하는 사회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정책에 동의를 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취약 계층 요금 감면 등 복지 성격으로 정부 부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비싸다고 하는 통신요금에는 주파수 할당 대가와 전파 사용료 등 이통 3사가 납부하는 1조 원이 넘는 ‘준(準)조세’가 포함돼 있다. 정부가 통신사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돈은 그대로 두고 이통사 몫만 깎으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이동통신#요금할인#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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