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건혁]증권가가 웃지 못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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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혁 경제부 기자
이건혁 경제부 기자
최근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부산행’. 영화 속 주인공 석우(공유)는 고객 돈을 대신 굴려주는 펀드매니저다. 파산시켰어야 할 회사를 ‘작전’으로 살려내고, 시장 정보가 부족한 개미(개인투자자)들에게 뻔뻔하게 손실을 떠넘긴다. “우리 아빠 펀드매니저예요”라고 자랑하는 석우의 딸에게 상화(마동석)는 “개미핥기네”라고 툭 내뱉는다. 이 순간 관객들의 웃음이 터진다.

대부분의 관객이 박수를 치며 웃을 때 얼굴을 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를 본 펀드매니저 A 씨는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다가 얼굴이 화끈거려 혼났다”고 했다. 그는 “업무에 치여 살면서 가족에게 소홀했는데 개미핥기라는 소리나 듣고 살려니 자괴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예전에 고객의 투자금을 대신 굴려주고 손실 위험을 관리하는 펀드매니저는 억대 연봉을 받는 전문 금융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점수를 크게 잃었다. 올해 초 개봉된 미국 영화 ‘빅 쇼트(Big Short)’는 펀드매니저를 비롯한 금융인들을 탐욕스럽고 무책임하며 다수 시민이 피해를 볼 때도 홀로 이익을 챙기는 데 골몰하는 ‘개미핥기’처럼 묘사할 정도다.

허구인 영화 속 대사를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지난해 4월경 불법 채권 파킹 거래에 가담한 혐의로 100명이 넘는 펀드매니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같은 해 12월 한미약품의 내부 정보를 이용한 펀드매니저가 수백억 원의 부당 이익을 거둬 논란이 됐다. 올해도 각종 비리로 경찰이나 검찰에 불려 다니는 ‘개미핥기’ 펀드매니저들이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개미핥기’ 펀드매니저의 일탈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당연히 정보력이 취약한 개미들이다. 펀드매니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 금융투자 업계가 흔들리고 금융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는 기업과 시장도 위축된다. 투자자를 위해 모니터 대여섯 개 앞에서 수익률을 분석하고 머리를 쥐어뜯어 가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선량한 펀드매니저도 ‘개미핥기’의 피해자다.

‘부산행’을 봤다는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펀드 수익률이 좋아지면 펀드매니저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은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수익률만 올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영화 속 ‘개미핥기’ 대사에 1000만 관객이 손뼉을 치며 공감했을까. 또 수익률로만 펀드매니저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최근 금융투자업계가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로봇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시장은 신뢰를 먹고 자란다. 투자자들은 신뢰할 만한 도덕성을 갖춘 대리인이 자신의 소중한 돈을 관리해주기를 바란다. 믿음이 있다면 시장 상황이 나빠도 투자자들이 당장 돈을 빼진 않을 것이다. 펀드매니저들은 ‘개미핥기’ 이전에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 사실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보길 바란다.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
#펀드매니저#개미핥기#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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