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영조도 실패한 개혁… 치밀한 전략으로 본질을 바꿔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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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역 폐단 없애려 일괄과세 추진… 양반 불만 높자 어정쩡한 봉합
신분제 등 근본문제 손질 못한 탓

18세기 조선 백성들을 가장 괴롭힌 것 중 하나는 군역세(軍役稅)였다. 양반은 병역이 면제됐지만 일반 양인은 1년에 면포 2필을 군포(軍布)라는 이름으로 바쳐야 했다. 그런데 숙종 시대 이후 돈으로 양반 신분을 살 수 있게 되면서 양인이 무섭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세수는 반 토막이 났다. 결국 부족해진 세수를 메우기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한 사람에게 죽은 아버지와 도망간 형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 몫의 세금까지 물렸다. 가난한 백성은 파산할 수밖에 없었고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이 같은 군역의 폐단을 바로잡자며 등장한 것이 군역 개혁론인 ‘양역변통론(良役變通論)’이다.

영조가 기본적으로 지지했던 안은 신분의 구분을 철폐하고 모든 사람이 군포를 내는 것이었다. 다만 양반들의 자존심을 배려해 징세의 대상을 사람이 아닌 ‘가호’로 바꿨다. 그러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집집마다 면포를 내도록 하자는 호포세(戶布稅)는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750년(영조 26년) 대신 이종성이 장문의 반대 상소를 올렸다. 일단 부유한 호(戶)와 가난한 호를 객관적으로 가리기 어려워 공정한 과세가 어렵다는 게 그의 반대 논리였다. 양반호에 세금을 물려봤자 대다수가 별다른 돈벌이가 없는 가난한 신흥 양반이라 재정이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양반층이 불만 세력으로 변해 정권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전국의 호구 통계가 엉터리라 이것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면 부정부패만 판을 칠 것이란 점 역시 지적했다. 이종성의 주장에는 신분제를 깨서는 안 되며, 통계와 공무원을 믿을 수 없고, 이미 세금을 부과하기엔 국민들이 가난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사실 이 같은 전제들은 조선이 마주한 개혁의 ‘진짜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종성은 이 같은 전제들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쏙 빼버린 채 호포제 개혁이 쓸모없다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가 개혁이지만 막상 작업에 착수하면 작고 간단해 보이는 일조차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온갖 불평이 쏟아지고 결국 개혁은 문지방만 넘어갔다 되돌아온다. 개혁이란 정책이나 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근본’을 바꾸는 것이라는 사실을 놓치기 때문이다. 호포제 논의 과정에서도 ‘양반도 세금을 내자’ ‘세금을 공평하게 내자’는 것은 개혁 과제가 아니었다. 이종성이 지적한 전제들, 신분제도의 개혁과 산업·경제 개혁이 진정한 개혁 과제였지만 이는 외면받거나 개혁 과제라는 데 동의를 얻지 못했다. 이 문제를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천하의 정략가 영조마저도 눈물을 머금고 호포제 추진을 포기했다.

대안으로 탄생한 것이 균역법이다.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이고, 부족한 세수는 어전세(漁箭稅), 염세(鹽稅), 선세(船稅) 등으로 메우는 방법이다. 그런데 세금을 반으로 줄이니 군사비가 반으로 줄었고, 결국 군사력 역시 반으로 떨어졌다. 한말(韓末)이 되면 왕궁조차 경비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영조만큼 뛰어난 리더가 없었지만 그런 영조도 진짜 개혁 대상을 빼 두고는 온전한 개혁을 할 수 없었다.

개혁은 정말 어렵다. 겉으로는 ‘변혁’ ‘혁신’ 등의 구호를 대대적으로 외치면서도 약간씩만 수정하고 넘기려는 경우가 많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개혁의 진짜 대상과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치밀하게 전략을 세우고, 구성원을 설득하고, 도전하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노혜경 호서대 인문융합대학 교수 hkroh68@hotmail.com
#dbr#경영#전략#영조#정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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