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제조업체가 제품 최저가 결정”… 소비자엔 무슨 이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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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매가격 유지행위’ 일부 예외 허용 방침 논란

A골프용품 대리점 주인은 계약한 특정 업체의 골프채를 팔기 위해 열심히 판촉활동을 벌였다. 해당 브랜드 용품만 따로 전시한 쇼룸을 만들었다.

하지만 고객들은 이 대리점에서 골프채를 사지 않았다. 건너편 B점포에서 똑같은 제품을 더 싸게 팔았기 때문이다. 낙심한 A대리점 주인은 판촉활동을 그만뒀다.

이처럼 판촉 경쟁이 제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골프용품 제조업체 테일러메이드코리아는 300여 개 대리점에 자사 제품을 일정 가격 이하로 팔지 못하도록 했다. 공정위는 2009년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를 이유로 테일러메이드코리아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억8600만 원을 부과했다.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는 유통업자가 제조사로부터 물건을 구매해 소비자에게 다시 판매할 때 제조사가 유통업자에게 자사 제품을 일정 가격 이상(최고) 또는 이하(최저)로는 팔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에 대해 원칙적으로 예외 없이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 ‘최저가격 유지 행위’에 일부 예외가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공정위는 제조업체가 최저가를 결정함으로써 발생하는 ‘소비자 후생 증대’가 ‘경쟁 제한 효과’보다 크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이를 허용하는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 심사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제조사가 최저가를 결정하면 유통업체인 대형마트가 일부 품목에서 현재와 같은 가격 인하 경쟁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공정위의 개정안은 예외 사유가 명확하지 않은 데다 제조사가 최저가를 결정함으로써 소비자가 유통업체의 ‘가격 인하 경쟁’을 통한 이득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테일러메이드코리아, 한미약품 사건 등의 대법원 판례를 반영해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 심사지침을 개정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시장 상황에 따라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가 오히려 상표 간 경쟁을 촉진해 결과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판시했다.

공정위는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는 기본적으로 위법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관련 시장에서 △브랜드 간 경쟁 활성화 정도 △최저가 유지 행위로 인한 서비스 경쟁 촉진 여부 △소비자 선택의 다양화 여부 △신규 사업자 진입장벽 존재 여부 등 예외적으로 정당한 이유를 고려해 예외를 두기로 했다. 최저가 유지 행위의 정당성은 제조업체가 입증해야 한다.

제조사들은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당분간은 기존 가격 결정 방식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다”며 “법이 시행되고 시간이 좀 지나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제조업체들도 있었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소비자가격 제도가 사라지고 치열한 경쟁이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제도가 얼마나 효용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그동안 경쟁을 중심으로 한 가격 정책과 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체들은 입법 취지 자체에 의문을 품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어떤 제조업체가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복잡하게 입증하면서까지 가격을 조정하려 할지, 또 그를 통해 얻는 이익이 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가격 경쟁이 제한돼 소비자가 체감하는 제품의 원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공정위는 행정예고 기간인 다음 달 13일까지 이해관계자와 관련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한 뒤 전원회의 의결을 거쳐 개정안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세종=박민우 minwoo@donga.com / 김성모 기자
#공정위#제조업체#최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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